김도진 전 IBK 기업은행장
김도진 전 IBK 기업은행장(법무법인 세종 고문)

[공감신문] 김도진 칼럼니스트 = 《자화상 내 마음을 그리다》
지은이 김선현
출판사 한길사
출판연도 2024

자화상(Self Portrait)이라는 단어는 자아를 의미하는 'self'와 자의식을 그린다는 뜻의 'portray' 가 합쳐진 것으로 자기를 '끄집어내다', '밝히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화상은 작가의 의식적, 무의식적 요소들이 풍부하게 포함된 이미지의 총체이며, 우리는 자화상을 통해 작가 자신만의 양식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자화상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그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떻게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지, 희로애락 등의 감정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붙잡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지요.

사람들이 외부 세상에 고백하는 것과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는 것의 일치성을 '진실성'이라고 규정한다면 자화상은 바로 이 진실성에 기인한 장르입니다.(P.331)

마음을 조용히 정화하는 시간이다.

 

(P.33) 눈은 마음의 창
눈은 사람의 내면을 나타내는 '마음의 창'이고 세상과 접촉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입니다. 미술치료에서 눈을 생략한 것은 외부에 대한 회피와 거부를 상징합니다. 반면 지나치게 눈을 강조하여 그렸다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민감하거나 의심이 많을 수 있습니다.

또한 눈을 감았거나 작게 표현했다면 내향적이거나 자신에게 도취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눈동자가 없는 텅빈 눈을 그렸다면 환경이나 타인과의 관계에 관심이 없거나 마음이 공허하다는 의미입니다.

(P.41)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다
인생을 살다가 자신이 믿고 있는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 단순히 화만 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상대에 대한 분노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상대를 믿었던 자신을 자책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결국에는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지경이 됩니다. 한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하거나 밖에 나가는 것을 꺼리게 되기도 하지요. 심한 경우는 우울증이나 화병, 트라우마까지 생기기도 합니다. 지금 그런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이 그림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음 그림을 보십시오. 보통 우리는 인디언이 집단으로 움직이고 늘 즐거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축제 같은 특별한 행사를 통해 화려한 모습을 많이 보여줄 거라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이 작품을 한번 보세요. 베브 두리틀(Bev Doolittle, 1947- )은 주로 자연과 인간을 모티브로 수채화 작업을 하며, 작품에 인디언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은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인디언의 정서를 잘 표현했습니다. 이 인디언은 홀로 강가에 앉아 있습니다. 물도 나무도 비슷한 파랑과 초록 계통의 색상으로 통일해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자연에 속해 있는 느낌을 줍니다. 인디언이 앉아 있는 자리만 연한 노란색과 연둣빛을 넣어 밝게 했지만 바위에 앉아 있는 위치가 불편해 보이기는 하죠.

초록색은 노랑과 파랑의 중간색으로 모든 색의 통로 역할을 하며, 어떤 색보다도 편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색깔로 자연, 균형, 정상적인 상태를 상징합니다. 초록은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능력이 있어 감정의 균형을 회복시키고 몸에도 건강한 활력을 줍니다. 파랑도 초록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편안하고 부드럽게 만들고 감정을 풍부하게 해줍니다. 급하고 여유가 없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해주죠. 그래서 미술치료에서 파랑은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자신을 마주할 여유를 주며 용기를 북돋우는 색깔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에는 물에 비친 새의 이미지를 볼까요. 물에 비친 새의 이미지는 인디언의 자세와 비슷합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새는 인디언의 영혼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와 배신감을 작품 속의 하얀 새처럼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혼의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이 작품은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며, 시각적 쾌감도 안겨줍니다.

아마도 그림 속 인디언은 깊은 고민으로 홀로 강가에 나와 꽤 긴 시간을 보낸 듯합니다. 인디언의 시선은 우측 상단을 향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보는 사람의 시선도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 바깥쪽의 여백으로 향하게 합니다. 이런 시선의 흐름 덕분에 지금 눈앞의 상황보다는 다른 곳으로의 시각 전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도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답답해하고 있다면, 일단 밖으로 나가 높고 푸른 하늘을 한번 바라보세요.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 1) 베브 두리틀 
<내 영혼의 비상> Let My Spirit Soar(1984) 
석판화, 71.4X56.5cm 개인 소장

 

(P.104) 무의식에 갇힌 소망
남성 안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아니마(anima), 여성 안에 존재하는 남성성을 아니무스(animus)라고 합니다. 우리 내면에 모두 존재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삶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이성을 이해하고 이성과 원활한 관계를 맺게 도와주기도 하지요.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의식과 무의식을 이어주는 리비도(Libido)가 무의식과 연관된 상징적 이미지와 연관되어 흘러나오기 때문에 이성의 이미지를 통해 나타나는 아니마도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성성은 인류에게 가장 본질적인 표현 대상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왔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빈치라는 마을의 권럭자인 아버지와 가난한 농부의 딸인 어머니 카테리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다빈치의 생모가 아닌 다른 여인과 정식으로 결혼했고 다빈치는 다섯 살 때까지만 생모와 살다가 그후에는 아버지와 계모인 돈나 알비에라와 함께 살았습니다. 두 명의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성장 배경은 다빈치의 작품과 연구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모나리자는 조콘다라는 부유한 피렌체 상인이 아내의 초상화로 주문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4년 동안이나 그렸으면서도 끝내 미완성으로 여겨 주문자에게 보내지 않고 자신이 소유했습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그 이유는 조콘다 부인의 얼굴에서 어린 시절 보았던 어머니의 행복하고 황홀한 미소를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이 그림에 접근한 프로이트는 먼저 모나리자의 미소에는 서로 다른 두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고 전제합니다. 여자의 애정 생활을 지배하는 모순인 정숙과 유혹 사이, 즉 가장 헌신적인 부드러움과 무자비한 관능성, 성녀와 악녀, 귀부인과 창녀의 상반된 요소의 결합입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 그림을 보고 "선과 악, 잔인과 자비, 얌전과 앙큼을 품고서 그 여자는 웃고 있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일찍 어머니와 헤어져야 했던 다빈치의 마음에는 어머니가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아로새겨졌을 것이고 그 여인상은 모나리자의 모델이 된 어느 피렌체 여인과 겹쳐졌을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에 다빈치가 일찍 성숙하게 되었으며, 남성성까지 상실하게 되었다고 해석했습니다. 리비도의 대부분이 지칠 줄 모르는 탐구 본능으로 승화됐을 것이라고도 프로이트는 추측합니다. 한편 이 그림은 다빈치가 자신의 생모와 계모에 대한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낳아준 어머니와 길러준 어머니에게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다빈치의 억압된 욕망을 재현했다는 것이지요. 

 (그림 2)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Mona Lisa(1503-1506)
캔버스에 유채, 77×53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P.201) 고통을 아름답게
자화상을 가장 많이 남긴 화가 중의 하나가 빈센트 반 고흐(Vincet van Gogh 1853-90)입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인물로, 순간순간의 감정을 색깔로 담아냈습니다. 표현하고 싶으면 표현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분노하고, 극단적으로는 귀를 자르고 싶으면 자르기까지 했으니까요.

고흐가 감정적으로 극단을 오가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어쩌면 태어났을 때부터 있었는지 모릅니다.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이름은 고흐보다 1년 먼저 태어나서 얼마 안 돼 죽은 형의 이름이니까요. 그래서인지 그의 자화상은 죽은 형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자신을 형의 모습 또는 형보다 더 나은 인물로 대체하려는 심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직 그림을 통해서만 사람과 접촉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모델이 부족한 데다 다른 사람과의 교제도 어려웠던 탓이죠.

예술촌 건설을 꿈꾸던 고흐는 고갱과 베르나르를 끈질기게 설득했고 1888년 10월 고갱과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성격 차이가 심해 그 생활은 순조롭지 못했지요. 그해 12월 발작을 일으킨 고흐는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랐습니다.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에서 태연하게 파이프를 물고 있는 반 고흐는 불안, 고독, 불행과 싸우면서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하나 더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은 파이프가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것입니다.

반 고흐는 1888년 9월 자신을 만나고 돌아가는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의자를 그렸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빈 의자를 보면서 파이프를 피우는 아버지를 떠올렸듯이 파이프를 피우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실패한 아버지의 인생을 따라가는 자신을 보는 것이죠. 

심리 상태는 색에서도 드러납니다. 모피의 파란색과 검은색 털들은 곤두서 있고 배경의 오렌지색과 빨간색의 경계선은 그의 눈과 일직선을 이룬 채 질병의 징후인 붕대로 우리의 시선을 이끌면서 파이프 연기로 연장됩니다, 빨간색 배경 위에 그려진 흰색 붕대는 열기로 몸을 따뜻하게 감싸려는 것으로 상처 입은 사람의 무의식을 반영합니다. 그림 속의 파이프는 고흐 자신의 상징으로 그림의 마지막에 더해져 내적 고요와 금욕적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림 3) 빈센트 반 고흐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and Pipe (1889) 
캔버츠에 유채, 51X45cm 취리히 미술관

 

(P.343) 당당한 완벽주의자
댄디즘(dandyism)을 아시나요. 19세기 초 영국 사교계 청년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한 사조입니다. 세련된 복장과 몸가짐으로 일반인에 대한 정신적 우월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페르디낭 빅토르 외젠 틀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ene Delacroix, 1798-1863)의 자화상에는 보다시피 자신 외에 아무것도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배경의 색채와 터치가 꼭 잔잔함 아래 숨어 있는 내면의 정열을 암시하는 것 같지만 말이죠. 오직 자신만을 표현한 이 작품 속 화가의 지적인 표정, 세련된 차림새, 약간 치켜든 턱에서 강렬하고 당당한 자의식이 느껴집니다. 이것은 19세기 말 프랑스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한 댄디즘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등을 곧게 펴고 가슴을 활짝 열었으며 목도 꼿꼿이 세우고 있습니다. 그의 얼굴을 보면 미간에 두 줄의 주름이 잡혀 있고 고개는 살짝 들었으며 턱선이 날카롭고 광대가 있으며 콧날이 높고 오뚝합니다. 들라크루아의 왼쪽 눈만 보면 침착하게 응시하는 듯하고 오른 쪽 눈을 보면 노려보는 듯합니다. 이런 강인한 인상은 지적인 면에서 우아함을 풍기는 동시에 이면의 복잡함과 불안함을 암시하면서 야성적이고 기이하게 느껴집니다.

이면의 복잡함과 불안함은 들라크루아의 자세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몸을 오른쪽 사선 방향으로 틀고 턱을 살짝 든 채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만한 동시에 자기방어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그래서 절제되어 보이면서도 불안해 보입니다. 지적인 호기심과 지적인 경계가 동시에 느껴지죠.

들라크루아는 평소 옷차림에 무척 신경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것이 외모에 자신이 없어서였다니! 저 정도면 괜찮다 싶은데 예술가들이 흔히 그러듯이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았던 사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는 자신의 예술론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그림은 화풍을 초월해서 영혼과 감각을 감동시키고, 지성을 고양시켜주고, 지성에 빛을 던저주는 것입니다."

외모에 대해서도 그러했듯 그의 예술적 기준은 매우 높으며 이상을 지향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림 4) 페르디낭 빅토르 외젠 들라크루아
 <자화상> Self Portrait(1837) 
캔버스에 유채, 65 X54.5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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