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년퇴임식.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년퇴임식. 

[공감신문] 유안나 기자=“사회에는 남은 죽어도 상관없고, 나만 살자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자기 혼자만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면 성공을 못하고, 다른 사람과 공존하면서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자세로 살면 무조건 성공인이 됩니다.”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사법연수원 14기)는 공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년 퇴임을 앞두고 젊은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강 부장판사는 이날 퇴임식을 기점으로 1988년 임명 이후 이어진 36년의 법관생활을 마무리한다. 그의 좌우명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다. ‘선한 일을 한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넘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청년들을 향해서도 이러한 의미를 한번 더 강조한 것이다.

강 부장판사는 “저의 평생 교훈이 적선지가 필유여경인 만큼, 평생 주변 어려운 사람들, 친구들을 돕는 그런 자세로 생활해 왔습니다. 머릿속에 든 지식이나 책, 글, 재주 등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나눴고, 지금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AI) 판사’로 불리는 강 부장판사는 재임기간 1만 201건의 판결문을 작성했을뿐만 아니라, 법조계 디지털 전환을 위해 12권의 전자책을 썼으며 책 전체를 무상으로 국민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디지털·AI 연구소(가칭)’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AI 활용 지식을 전하는 등 봉사하는 법조인 제2막의 삶을 계획하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Q. 정년퇴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36년간 많은 업적을 남겨오셨지만, 그중에서도 12개의 저서(전자책)를 남기셨습니다. 이를 소개해주신다면.

2003년에 ‘함께하는 법정’이라는 단행본으로 한국 전자소송, 전자법정의 개념과 진행의 얼개를 제가 설명했습니다. 그 이후에 2005년에는 손해배상 소송 실무를 같은 일을 하던 8명의 판사와 합심해서 ‘교통·산재 손해배상 실무’ 공저로 낸 바가 있고, 2012년쯤 한국정보법학회 공동회장 자격에서 40여 명의 석학을 모시고 ‘인터넷, 그 길을 묻다’라는 종합적인 교과서를 기획한 바도 있습니다.

그리고 2018년 2월에 ‘인생의 밀도’라는 단행본에서 ‘혁신의 길목에선 우리의 자세’라는 유튜브 136만 뷰 영상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저서 외에 2014년 창원 법원장 부임에서 시작하여 2018년 법원도서관장 보직을 끝날 때까지 7,800쪽의 내부 소통 자료집을 낸 바가 있는데, 그중에서 창원의 것을 요약해서 ‘용지호를 벗삼아’ 한 권, 부산지방법원에서의 것을 요약해서 ‘금정산의 여명 1, 2’ 이렇게 세 권의 전자책을 발간한 바가 있습니다. 

강민구 부장판사가 남긴 책 일부 
                 강민구 부장판사가 남긴 책 일부 

그 후 2021년 고 윤성근 부장판사의 ‘법치주의를 향한 불꽃’ 시리즈 4권과 송종의·남문우 대선배님의 저서를 편집하는데, 제가 미력이나마 보태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2021년 12월부터 짬을 내서 9건의 전자책을 추가로 발간했습니다. 법률논문집과 법원 전산망 코트넷 게시물 자료집, 즉문즉답 대화록, 일상의 수필집 등 여러 범주별로 책을 냈습니다.

먼저 나간 세 권의 전자책을 합하면 12권의 전자책이 되는데, 총 페이지는 9,455쪽이 되며, 전자책 전체를 무상으로 국민에게 공개한 바가 있고, 종이책을 원하는 독자를 위해서 영인본을 제작사인 바른 디자인에서 저의 인세는 없이 실비에 주문 제작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전자책의 내용은 저의 네이버 블로그(디지털 상록수, AI 시대의 혁신)나 언론 기사, 생성형 AI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Q. 특히, ‘IT 판사’로 불릴 만큼 AI 쪽에 큰 관심을 가져오셨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계기 또는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1985년 5월에 육군사관학교에 부임하여 당시 육사에 설치되어 있던 중형 서버 컴퓨터에 연결된 더미터미널을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교 학사 행정이나 성적 처리 등을 컴퓨터의 단말기로 하면서 파스칼·포트란 같은 서버에 돌아가는 코딩 언어를 공부했습니다.

1988년 3월 의정부 지원에 부임한 후 그해 중반 무렵 용산 컴퓨터 가게에서 XT급 컴퓨터를 중고차 한 대 정도 되는 거금을 들여서 조립 PC로 만들어 판결 업무에 투입했고, 그 뒤에 1991년경에 국가에서 컴퓨터를 지급했습니다.

그 무렵에 종이책으로 된 컴퓨터 잡지 ‘HOW PC’, ‘PC 사랑’ 같은 컴퓨터 잡지 6개월 치가 모이면 제본선을 잘라내서 2회독 이상 볼 기사만 추려서 다시 역 제본해서 단권화를 시켰습니다. 즉, 여섯 권의 컴퓨터 잡지가 500여 쪽으로 압축이 됩니다. 그것을 또 여러 차례 읽고 컴퓨터에 관한 지식 현행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는 ‘구글 알리미’나 인터넷을 통해 꾸준히 컴퓨터의 세계에 몰입했으며, 2022년 11월 30일 AI가 도입된 후에는 생성형 AI에 집중적으로 몰입해 오고 있습니다.

Q. ‘법조계 디지털전환’에 힘써오셨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해왔는데,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나요?

사법정보화 초창기에 여러 가지 전산화에 대한 오해가 발생하고 거부반응도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자 업무를 대폭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해 주고 시간도 확보할 수 있어서 법원 구성원 거의 모두가 만족하는 상태로 변했습니다. 결국 어차피 닥치는 정보화의 바람을 조금 일찍 인식하고 널리 확산시키는데 제가 이바지했는데 일부에서 거부감이나 오해를 할 수도 있었겠다 하는 그런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컴퓨터 활용 재판 경험을 말씀해 주세요.

1988년 컴퓨터를 처음 쓸 때 의정부 지역에 군인이 교통사고를 당할 때 민사 손해배상 사건으로 군인의 정년까지 호봉 승급을 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호프만식 이자 계산 등이 복잡해서 수작업으로 차트를 그려서 판결하면 판결문 하나 작성해 수일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당시에 있던 쿼트로 프로 스프레시트 프로그램의 함수 기능을 익혀서 20분 만에 3~4일이 걸릴 판결문 계산표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본 19분의 동료 법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컴퓨터를 도입한 것이 추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2004년경 서울중앙지방법원 손해배상 재정단독 재판부 팀장을 할 때 자동으로 계산해 주는 엑셀을 이용해서 조정 기일에 들어가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과실 상계 비율이나 여러 가지 주장을 쌍방의 이야기를 듣고 현장에서 즉각 대응했습니다. 그 엑셀 계산 결과표를 출력해서 조정 근거로 많이 활용해서 사건 해결에 엄청난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건설 관련 사건이나 노임 관련 사건 등 계산이 필요한 사건에서 컴퓨터에 힘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최근에 범용 AI가 나왔지마는 아직 AI가 바로 직접적으로 판결 작성에 쓰인 예는 없고, 올해 상반기 중에 법률 전문 AI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고 내년 중·하반기에 법원 내부용 AI가 도입되면 판결문 작성을 레고 블록으로 모형 기차 조립하듯이 하는 케이스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후배 법관들이 그 혜택을 입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Q. 생성형 AI를 통해 어떤 사법부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시나요.

생성형 AI를 이용한 판결문 작성 도우미 AI가 법원에 도입되면 판결문 이유 작성에 드는 품을 현저하게 줄일 수가 있어서 같은 시간에 효율을 200에서 300% 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재판 지연으로 지금 국민의 원망이 높은데, 생성형 AI를 판결문 작성 도우미 AI로 도입하면, 지금 일 주당 배석 판사당 세 건씩 쓰는 관행이 바로 개선되어 재판 지연이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 사법부 개혁은 국가 차원의 변화도 불가피합니다. 한국 발전을 위한 어떤 미래 비전이 필요할까요?

우선 행정 각부부터 AI 기반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보안과 국가 기밀은 조심해야 하지만, 일반적인 업무 처리를 내부용 AI를 도입해서 업무 처리의 속도를 지금보다 두세 배 이상 올리고, 추가 인원 숫자를 더 이상 안 늘려도 될 수 있는 그와 같은 환경을 만들면 국민 세금도 절약됩니다. 그래서 행정 각부가 일단 혁신되고, 지방자치단체까지 혁신되며, 공기업도 사기업 수준의 AI 활용이 되면 나라 전체가 혁신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Q. 이를 위해 기업, 정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기업이나 정부 부처별로 자신만의 고유한 내부용 AI를 잘 만들어서 업무 처리의 속도를 높이고, 국민과의 소통에도 큰 도움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모든 것이 AI로 귀결되기 때문에 AI의 부작용은 억제하면서 순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정신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1.16. 세종 행안부 강연 때에도 강조했습니다. 올해 발표된 외국 보고서에 의하면 2032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조 달러 이상의 부가 AI로 인해서 달성되고, 직업의 90%가 AI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Q. AI 확대로 인하여 법조계 등 인력 대체 및 감축에 대한 문제도 상존합니다. 이에 대한 견해는.

법조 전문 AI가 도입되면 기존의 변호사들의 업무 능력은 두세 배 증진되지만 직접적으로 젊은 어쏘 변호사 직군에서 일자리 타격이 예상됩니다. 이제는 젊은 법조인들은 송무시장만 바라보지 말고 다양한 직종의 업종으로 자신의 업무 범위를 넓혀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 어쏘 한 명이 일할 수 있는 분량이 있다면 AI가 도입되면 한 명이 세 사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인력 감축 현상이 불어 닥칠 것입니다. 그와 같은 현실에 냉정하게 준비해서 각자의 자기 능력을 개발하고 다양한 일을 하는 쪽으로 자기의 앞날을 개척해야 합니다.

Q. 생성형 AI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개개인이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아무리 AI 시대라 하지마는 그 기초는 아날로그 내공이 튼실해야 됩니다. 아날로그 내공은 생각 근육을 키워야 하는데, 생각 근육 육성에는 끊임없는 독서, 하루에 한 줄이라도 적는 글쓰기, 그리고 사고 실험과 명상의 일상화, 마지막으로 각계 고수 전문가와의 접촉면을 유지하는 것 등으로 생각 근육을 키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AI 앱이나 그와 같은 기술 추세에 대해서 너무 겁을 먹지 말고 호기심·탐구심·열정을 가지고 스스로 학습하고 자기 계발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예전 습관에 머무르는 것을 깨뜨리려면 심리학적으로 아홉 배의 고통이 따르지만, 그 고통을 우리가 각자 견뎌 내야 합니다. 창의정신, 감성개발을 바탕으로 평생 학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생계형 지식인, 꼰대형 지식인이 되지 말고, 융합형 지식인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리하려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다양한 아날로그 내공을 축적해야 가능합니다. 결국 이렇게 축적된 아날로그 내공과 디지털 내공을 결합한 디지로그 경쟁력을 각자 갖추어야 합니다. 저의 ‘디지로그 명심보감’ 유튜브 시리즈 68개가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Q. ‘송백일기 3’(2023년 생성형 AI 집중탐구 전자책)에서 정년퇴임 이후 ‘디지털 AI 연구소’를 열어 법조인 제2막의 삶을 시작한다고 하셨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제 본분이 어디까지나 법조인이기 때문에 5월 이후로 자그마한 법률사무소는 당연히 개설해야 하고, 그 외에 제 능력이 닿는 한 가칭 ‘디지털·AI 연구소’ 같은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서 저의 남는 능력으로 국민의 디지털 디바이드, AI 디바이드를 해결하는데 봉사하고 싶은 그런 계획이 있습니다.

제가 전문 공학도나 자연과학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 원리를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AI를 현장에서 엔드 유저 입장에서 활용하고 확산하는 데는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AI를 활용하고 생활 속에 뿌리내리는 데 제가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는 소박한 뜻입니다. 

    강민구 부장판사(오른쪽)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적선지가 필유여경’ 글귀 앞에 서 있는 모습. 
    강민구 부장판사(오른쪽)와 전규열 공감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이 ‘적선지가 필유여경’ 글귀 앞에 서 있는 모습. 

Q. 법조계 후배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한국 사회가 이념이나 진영으로 두 쪽으로 갈라지고 있고, 미디어도 갈라져 있으며, 유튜브에도 양극단 세력들이 선동·세뇌·과장·가짜 영상을 마구 퍼트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법관이 사회의 중심을 잡아서 잘 처신해야 합니다. 법관이 기대어야 할 의지처는 ‘이념·진영, 국민 정서법, 왜곡된 여론’이 아니라, ‘헌법·헌법 정신·법률·확립된 선례와 판례 · 독단이 아닌 공평한 정의감·개인적 독단적 양심이 아닌 법관의 보편적 직업적 양심’ 등에 기대어야 합니다. 그리고 1개 판사가 아니라 1국 판사의 자세로 매 사건을 처리하면, 어떤 내·외부의 압력이 있어도 자기를 지켜나갈 수가 있습니다.

미 육사의 교훈처럼 ‘듀티·오너·컨트리’ 즉, ‘의무·명예·조국의’ 가치를 마음속에 품고, ‘법불아귀 승불요곡’ (법은 부귀에 아부하지 않고, 줄자는 스스로 굽어서 측량하지 않는다) 정신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동래 부사 송상현의 정신인 ‘전사이가도난’(군인이 죽는 것은 쉽지만 명나라로 가는 길은 내 줄 수 없다)라는 그와 같은 기개 높은 지사적 자세를 법관도 수시로 갈고 닦아야 합니다. 두 글귀는 제가 부산법원 청사에 걸어 두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호기심·탐구심·열정’에다가 이타심을 보태어서 정보화·AI의 파도를 타면 반드시 훌륭한 법관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항상 타인에 대한 ‘사랑과 정성’을 토대로 해서 ‘솔선수범·선공후사·감성소통’의 리더십 세 가지 방책을 활용해야 하고, ‘적선지가 필유여경’을 과학 법칙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년퇴임식.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년퇴임식. 

다음은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정년 퇴임사다. 

사랑하는 법원 구성원 여러분께

오늘 저는 법원과 함께 걸어왔던 서른여섯 해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의 소회를 말씀드리기에 앞서, 먼저 정년 퇴임식 자리를 마련하고 참석해 주신 윤준 서울고등법원장님과 서울고등법원 구성원 여러분들, 귀한 시간을 내어 참석해 주신 법원행정처 천대엽 행정처장님과 관계자분들, 법원 구성원 여러분들, 외빈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988. 3. 1. 법관으로 임명받아 법원에서 36년여의 날들을 보냈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따르는 것이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당연한 이치이지만, 막상 정년 퇴임식이라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마주하니 머릿속에 그간의 나날들이 떠오르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2017. 1. 11. 부산지법 고별강연 끝에 ‘공직자는 한없이 국민과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짝사랑하다가 때가 되면 노병처럼 사라지면 된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제 와 보니 그 말이 저를 두고 한 예언이었나 하는 생각이 스치고, 저의 법조 인생을 돌이켜 보니 국민과 법원을 한없이 짝사랑 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별의 앞에서 할 말은 태산처럼 많지만, 이미 공개한 12권의 부족한 저의 전자책에 소상히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법관으로서 36년간 근무해 오면서 쌓이게 된 저의 경험에 비추어, 후배 법관 여러분께 감히 두 가지의 당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로, 어떠한 경우에도 법관의 재판에 근간과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은 헌법·헌법정신과 법률 그리고 확립된 판례·선례, 공평한 사회적 정의감이지, 그때그때의 사회적 분위기나 시류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진영 논리나 이념적 태도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판사는 개인이 아닌 ‘국가’의 중요한 부분이자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재판이라는 고귀한 직분을 위임받아 수행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외부적 압력이나 사회적 분위기에도 좌우되지 않고 재판함에 있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법관 스스로와 법원을 지켜나갈 수 있는 의연한 법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결국 재판에 임함에 있어 ‘일개 판사’가 아니라 ‘일국 판사’의 권능과 자긍심으로 임하면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제 인공지능, 즉 ‘생성형 AI’의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Bard, Copilot(=Bing), Chat GPT, Clova-X 등의 일상생활에서의 활용 사례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시대 발전은 더 이상 외면하거나 피할 수 없는 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필요한 선례를 검색하기 위해 ‘판결문검색시스템’에 검색어를 입력한 후 하나하나 판결문 파일을 찾아 읽어보면서 자료를 선별하던 고된 작업은, 이제 딥러닝과 빅데이터 학습을 통한 ‘생성형 AI’ 기술의 적용으로 그 부담이 경감되고 재판업무 효율과 역량을 현저히 끌어올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업무 능력을 갖춘 새로운 시대의 법관이 되어 주실 것을 당부 말씀드립니다.

먼저 떠나는 저의 빈자리를 채워서 여러분 모두 사법부의 독립과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 보장에 더욱 매진해 주실 것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법원을 떠나지만, 법률과 사회에 대한 제 관심은 계속될 것입니다. 제가 지금껏 배운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에서 사회에 이바지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 속의 디지털·AI 격차(디바이드)와 소외 현상을 줄여나가는 일도 함께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의 좌우명에 따라 제 길을 변함없이 걸어가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길 끝에 서면 모두가 아름답다”라고 한 문정희 시인의 시구절처럼, 돌아보니 법원에서 보낸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모든 나날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함께 했던 그 시간을 소중히 마음에 담고, 잊지 않을 것입니다.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인연법으로 앞으로의 여정에서 여러분 모두에게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와 함께 법원에서 한 팀(ONE TEAM)을 이루어 많은 고생과 헌신을 한 법관과 직원 모두에게 이 자리를 빌려 다시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가정에서 묵묵히 성정 급한 가장을 위해 모든 희생을 한 아내 장형원과 무관심한 아버지인데도 반듯하게 성장한 세 자녀와 학창 시절 저에게 헌신한 두 누나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저 하늘의 별이 되신 조부모·부모·장모님의 영전에 이 소식을 전하고, 저에게 여전히 큰 힘이 되어 주시는 장인어른께도 사위의 이 모습을 보고드립니다.

법원 구성원 여러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행복하시고 후회 없는 하루하루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4. 1. 30.

강민구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오른쪽)

 

대담= 전규열 대표이사 겸 발행인(경영학 박사)
정리= 유안나기자

 

[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 프로필 ] 

-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법원도서관 관장
- 대법원 사법정보화발전위원회 위원장
- 제37대 부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 부산지방법원 법원장
- 제39대 경상남도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 창원지방법원 법원장
-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 서울고등법원 판사
- 서울지방법원 판사
-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
-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 서울대 법학대학 법학 학사,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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