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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이야기] 창덕궁서 임금 즉위식을 그려본다
정환선 칼럼 기자
수정일 2016-11-18 18:33
등록일 2016-11-18 11:49

선왕 돌아가신후 6일째 인정문 앞마당서 즉위…통과 의례의 문 거쳐
정환선 창덕궁 길라잡이

[공감신문=정환선 궁궐길라잡이] 창덕궁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해설사와 함께 전각 부분과 후원 부분을 천천히 걸으면서 먼저 눈으로 감상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끔은 질문도하고 사진을 찍고 쉬엄쉬엄 걸음걸이로 돌아 다녀야 제격이다.

11월의 창덕궁은 단풍의 절정으로 오색 단풍이 정자와 전각과 잘 어우러져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이 시기는 평소 허용되지 않는 자유 관람이 허용된다. 자유롭게 관람하고 사진촬영하고 정자에서 한권의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여 왕이 부럽지 않다.

하지만 해설하는 이들은 평소보다 여러모로 신경이 쓰여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더군다나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몰리면 문화재와 자연환경의 훼손 예방 관람객들의 안전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11월 부용지 너머 단풍과 서향각
11월 존덕정과 존덕지 폄우사

 

 

 

 

 

궁궐에서 해설을 할 경우에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자 창덕궁 관련 사진첩을 들고 다니면서 소개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동궐도(東闕圖)다. 이 화첩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1825년에서1830년 순조임금 때 도화서의 화공들에 의하여 제작되어진 것으로 보이며 국보 제 2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궐도에 그려진 왕이 되기 위한 통과의 문들

위 동궐도를 보면 임금님이 일상 업무를 보는 편전(便殿)으로 사용하였지만 왕이 훙(薨,돌아가심)하실 경우 빈전과 혼전으로도 사용되어졌던 청기와 지붕의 선정전(宣政殿), 그 앞으로 선정문(宣政門), 성종 때 예문관 대제학 서거정이 편액을 지은 솟을 대문 형식의 연영문(延英門), 그리고 숙장문(肅章門)과 인정문(仁政門) 등이 잘 나타나 있다. 연영문의 경우는 동궐도에는 나타나 있지만 현재 동궐내각사 부분이 거의 사라져 버려서 복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조선시대에 왕위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세종(世宗)과 같이 선왕으로부터 직접 자리를 물려준다는 전교[禪位敎]를 받고 왕위에 오르는 양위(讓位), 왕이 훙(薨, 돌아가심)하고 난 후 후계자가 그 뒤를 혈통을 위주로 잇는 방식인 사위(嗣位), 중종과 인조처럼 기존의 왕을 쫓아내고 새로운 왕으로 즉위하는 반정(反正)이 있다.

어떤 방식이든 왕은 즉위식을 거쳐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왕위 계승방식은 선왕이 죽고 난후 계승하는 사위(嗣位)였다.

선원전을 나와 통과의례(通過儀禮)의 문을 거치는데, 숙종실록 1권은 왕세자가 왕으로 즉위하는 이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왕세자가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卽位)하였다. - 중 략 - 이날 성복(成服:상복을 입는 절차)을 마치고 왕세자가 관면(冠冕)과 길복(吉服)을 갖추고, -중략- 왕세자가 선정문(宣政門)으로부터 걸어 나와서 연영문(延英門)을 따라 가서 숙장문(肅章門)을 나와서 인정문(仁政門)에 이르니, 승지와 사관(史官)이 따라 나갔다.

왕세자가 서쪽을 향하여 어좌(御座) 앞에 서서 차마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소리를 내어 슬피 울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 승지와 예조 판서가 서로 잇달아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를 권하였다. 삼공(三公)이 도승지와 더불어 나아가 왕세자를 부축하면서 번갈아 극진히 말하였다. 왕세자가 어좌(御座)에 오르니, 백관들이 사배(四拜)하고 의식대로 산호(山呼)하였다. 예를 마치자, 사왕(嗣王)이 인정문(仁政門)으로부터 인정전(仁政殿)에 올라가 인화문(仁和門)으로 들어와서 여차(廬次)로 돌아왔는데, 우는 것이 끊어지지 않았으며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라고 적고 있다.

 

11월 환상적인 단풍의 관람정

왕이 돌아가시면 혼이 다시 돌아오도록 5일 동안 왕이 계속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세자는 즉위하지 않고 있다가 6일 째 되는 날 세자는 빈전(시신을 모시는 곳)이 차려진 선정전 옆 여막(廬幕, 선정전 옆에 임시로 설치한 거처)에서 나와 상복(喪服)을 잠시 벗고 대례복(大禮服)으로 갈아입은 후 통과의례의 문인 연영문과 숙장문을 지나 인정문 앞마당에서 즉위식을 치뤘다. 조선 27대 왕 중 인정문 앞에서 처음으로 즉위한 왕은 성종이후 즉위한 연산군이다. 그리고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등이 인정문 앞마당에서 즉위하였다.

왕(王)이라는 글자는 천(天) 지(地) 인(人)을 나타내는 3개의 일(一)이 뚫을 곤(|)으로 연결된 형상이다. 즉 국왕이란 덕으로써 우주를 관통하는 존재이자 하늘의 명(天命)을 받은 초월적 존재로 생각하여 중국에서는 덕이 있는 자에게로의 선양하는 계승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도 통치자가 되려는 사람은 치자(治者)의 으뜸 요건인 창성(昌盛)하고 아름다운 덕을 갖춘 이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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