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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해수 칼럼] 그녀의 호구들에게 박수를
지해수 칼럼 기자
수정일 2016-11-16 18:33
등록일 2016-11-16 15:12

“그녀라는 향수의 에센스는 무엇안가…호구들이 그녀의 취향 발전시켰다”

[공감신문 지해수 칼럼니스트] 난 오늘 그녀의 호구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쳐주고자 손뼉 대신 키보드를 치고 있다. 아마 그 호구들은 나란 사람에 대해 알지도 못할 테지만. 혹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안다고 하더라도, 밥 한 끼 같이해본 적 없는 내가 감사 성의 표시를 하고 있음을 알까.

 

나의 대부분의 시간들은 우울했었다. 30년이 좀 안되게 살았는데, 그중 한 25년, 그 중에서 기억이 있는 약 20년, 그 20년 중 우울치 않았던 시간들을 제외하면 내 인생에서 순수하게 한 17년 정도는 우울했던 것 같다. 오, 생각보다 적은 시간인 걸?

 

인생에서 나름의 큰 사건들과 시련이 누군들 없겠냐만, 아직 그런 걸 견딜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때 파급력은 대단하다. 마치 이경재 변호사가 정유라 씨는 아직 그런 걸 아직 견딜 나이가 아니라 귀국하지 못한다고 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사건이 진짜 여러 번 있었는데, 그걸 견뎌내면 나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더라. 몇 살 많은 언니의 조언이다, 잘 돌아오는 거다 유라야!

어쨌든 당시 스무 살이던 나는 혼자만의 방에 스스로를 가두었었다. 가족과도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외출이라고는 새벽기도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독실한 크리스챤이라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교회 사람들과 마주쳐야하는 주일 예배는 가지 않았다. 새벽 시간 오직 신을 찾아, 그에게만 나의 진심과 욕심 그리고 세상에 대한 증오를 표출했었다. 방언을 해본 적이 없지만 나의 이야기를 방언과 같이 쏟아냈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집으로와 잠만 잤다. 친구들도 당연히 안 만났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살의 방법들에 대하여 탐색해봤음은 물론이다.

 

그러던 중 나는 ‘나의 우울’에 조금씩 지쳐가며 나아지고 있었다. 그랬다, 심각한 정도의 우울은 아니었다. 그저 그 당시 견디기 힘든 사건에 대한 상처를 회복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한 여자 분의 미니홈피를 방문하게 된다. 그녀의 미니홈피! 거기서 받은 영감은 나의 우울을 바닥 저 끝까지 쳐버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곧 탄성감이 좋은 공처럼 나의 감정은, 덕분에 원 상태로 빠르게 복귀되었다.

나는 그녀의 모든 것들을 탐구했다. 그녀는 뭔지 모르게 나보다 훨씬 우울해보였다. 그래서 세상 제일 친한 느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것과는 달랐다. 나의 우울은 처참한 것이었고, 그녀의 우울은 ‘세련된 우울’, ‘고급스러운 우울’이었다. 곧 그러한 우울을 가진 그녀의 세계를 동경하기 시작했다. 마치 앙투와네뜨가 가졌던 파리의 우울이 이러한 것이었으려나, 싶었다. 나도 저렇게 우울하고 싶었다. 그랬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어진’ 것이었다! 그녀의 화려한 우울은 나를 동경과 더불어 열등감의 세계로 몰고 가서, 삶의 대한 욕망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영화 <아가씨>에서. 우울하고 화려한 아가씨 히데코)

그녀의 모든 것들은 굉장했다. 글을 쓰는 방식, 음악의 취향, 사진첩을 정렬하는 방식, 게시판의 글들, 사진을 찍는 방식, 사진을 찍는 장소, 그녀가 걸치는 것들, 그녀의 친구들. 난 나보다 나이가 몇 살이나 더 많은 그녀의 방식이 나와 절대 어울리지 않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우린 너무도 다르게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렇게 입는다면 마치 들꽃에 장미 향수를 뿌린 느낌일 게 뻔했다. 그저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저런 멋진 어른이 되어야지, 했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그러한 분별력과 이성이 있었다. 그랬기에 화려해지기 위하여 당장 엉터리 같은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났을까? 싸이월드와 함께 나의 우울함도 쇠퇴한 지 오래였다. 난 우연히 그녀와 차 한 잔을 마시게 된다. 그녀는 싸이월드 시절보다 훨씬 멋들어진 퍼(fur)에 고급스러운 싸이하이 부츠차림이었다.

어릴 적 동경의 상대, 나의 우울을 구원해 준 여자, <출발 비디오 여행>처럼 영화 따위를 추천해주던 취향의 롤 모델, 구원을 바라며 별을 쫓던 나의 동방 박사, 탐닉하던 대상, 난 세상 어떠한 여자를 대할 때보다 긴장했었다. 정말 우연한 만남이었다. 청담동의 한 찻집에서였다. 어떻게 연(緣)이 닿았냐고? 내가 아는 지인이 그녀의 호구였기 때문이었다.

 

“아는 동생인데 근처에 있다가 같이 왔어.”

그녀의 호구는 그녀에게 날 이렇게 소개했다. 응, 이라고 짧게 대답한 그녀는 나에게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실제로 그 이후 그녀와 난 클럽에서 한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당시 날 기억하지 못했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다른 쪽이었다. 나의 지인인 그녀의 호구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었기에. 그녀의 목표는 오로지 한 곳이었다. 그녀는 생각처럼 아주 도도한 여자였지만 말하는 어딘가에 간청하는 투가 섞여있었다. ‘나는 여태껏 이런 걸 먹어왔고, 이런 걸 걸쳐왔고, 이런 걸 탔었어. 하지만 요즘 상황이 좋지 않아 그러질 못해. 네가 나에게 이런 걸 해줄 수 있으면 널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해볼게.’라는 식. 그녀는 그런 걸 간곡하지 않게, 품위를 지키며 말하는 데에 선수였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정말 호구 중에 호구였던 나의 지인이 가진 거라고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과 넘쳐나는 돈 뿐. 그래서 세상 제일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녀가 바라는 것 이상을 더 얹어주었다. 그러면 그녀가 사랑해 줄까봐. 그녀가 그 보답으로 사랑을 줬느냐고? 아니, 그녀는 끝까지 도도한 여왕의 품위를 유지하셨다.

“네가 좋아서 해준 거잖아? 왜 이제 와서 구질구질하게 이래?”

그래, 이 호구야. 사랑한 네가 죄인이지, 죄인.

 

그녀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 그는 그녀의 뒤를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게 되고 우리는 굉장히 놀랐었다. 그녀는 흔히 말하는 꽃뱀 중에 꽃뱀이었다. 상당히 잘 배우고, 집안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여태껏 이런 걸 먹어왔고, 이런 걸 걸쳤었고, 이런 걸 탔던 게 맞았다. 그러나 그녀는 야망은 생각보다 굉장했다. 그녀는 ‘The better life’가 아닌 ‘The best’를 꿈꿨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취향, 매력, 미모를 이용하여 그릇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정말 도도해서 웬만한 자산가가 아닌 이상 상대도 하려들질 않았다. 그러나 예술가는 좀 다르게 대했다.(아마도 예술 지상주의가 조금 있는 것 같다!)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자산가들은 도전장을 던졌고, 도도한 그녀의 웃음을 보기 위하여 값진 것들을 많이 대접했다. 진귀한 것들로 만든 음식, 국내에 몇 병 없다는 와인, 자동차 블로거들이 한번 쯤 시승해보는 게 꿈인 자동차... 가끔씩 도도하던 그녀가 우울감에 젖을 만 할 때면, 그 남자들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는 게 두려워 때 마침 해외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녀는 분별력과 도도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값비싼 걸 해준다고 해서 화사한 웃음을 짓진 않았다. 자신의 취향에 맞고 맘에 들어야만 조금의 미소를 띄워줄 뿐.

그렇게 그녀가 먹고 듣고 맛보고 경험한 것들은 그녀를 조금 더 세련되고 멋지게 만들었고, 자신의 SNS 같은 공간에 그것들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스무 살,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실체를 몰랐던 나 같은 아이들은 그녀의 삶을 동경할 수밖에.

그녀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녀의 진짜 삶을 몰랐던 내가 유일하게 따라하는 방법이라곤, 그녀가 추천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그녀처럼 사진을 찍는 게 전부. 그녀와 같은 어른이 되는 방법을 알게 된 지금, 난 그녀와 같이 되고 싶은가?

그녀는 대단한 향기를 풍기는 여자다. 근데 ‘그녀’라는 향수의 에센스들이 무엇이었는가. 그녀를 사랑한 호구들의 진한 돈이었다. 그녀의 호구들은 그녀의 취향을 발전시켰고, 그 취향들은 날 위로했으며, 내 욕구마저 불끈거리게 했다. 허세가 좀 있는 나는, 작가가 된 이유 중에 ‘폼 나는 직업’이 갖고 싶어서였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그녀의 호구들에게 박수를 쳐줘야 마땅하지 않나!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투쟁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그녀에게도 호구에게 공사치는 삶 자체가 투쟁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인생 편하게 산다, 라고 말하겠지만. 특히나 그녀처럼 세련된 여자가, 다른 감각은 하나도 없고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돈 버는 것과 제 자랑뿐인 아재들과 나누는 대화가 재밌었을까?(오히려 재밌으려나? 나는 부류가 다른 인간이라 모르겠다.)

지금의 그녀가 나에게 멋져 보이냐고? 글쎄, 지금 난 딱히 롤 모델이 없다. 그래도 나에게도 호구가 있었으면 싶긴 하다. 나에게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 감정적으로 나에게서 진한 향기를 품어 나오게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사랑을 줘, 사랑! 관심! 믿음!

 

그녀의 섬세한 취향 덕분에 다양한 음악가와 아티스트들이 돈을 벌었을 것이다. 나 같은 허세쟁이들이 그녀 덕분에 그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 역시도 영감을 얻었다. 그녀의 호구들은 본인은 알지 못할 테지만 ‘나’라는 작가 한명을 키워냈다.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그 이름을 드높여라, 호구야! 아까 한 말을 다시 정정할게, 사실 사랑은 죄가 아니야! 당신들은 현대 사회 속에서 보호가 필요한 존재들이다. 사랑을 할 줄 안다는 거니까.

어디선가 돈 말고 진짜 사랑을 가진 감정적 호구들이 나타나, 그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주고 진짜 사랑을 주길! 혹시 또 모른다, 그게 내가 될지도? 아니다, 난 아재는 싫어. 난 아재들이 좋아할 스타일도 아니고. 사랑은 각자 알아서 하는 걸로.

어쨌든 감사한 마음을 이루 말할 길도 없으며 대부분 어디 사는 누구이신지를 몰라 이렇게 글로써 마음을 표현합니다. 세상 모든 호구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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