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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추억여행⑥ 도버의 彼岸, 칼레
조병수 칼럼 기자
수정일 2016-11-09 18:33
등록일 2016-11-09 17:09

유렵 대륙 가는 길목…남의 나라 떠도는 중동난민 소식에 울적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한밤중에 불현듯 잠이 깨더니 아무리해도 다시 잠을 이룰수 없다. 갈수록 정신이 맑아진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일어나서 TV를 켜보았다. 이리저리 채널들을 돌리다 보니, CNN에서 프랑스 칼레(Calais)에 있는 난민촌(Calais ‘Jungle’ migrant camp)를 철거한다는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근자에 자주 그 지역 이름과 함께 수많은 난민들이 영국으로 건너가려고 필사의 노력들을 경주하는 장면들이 보도되는 것을 보던 터였다. 그 난민촌이 ‘정글’이라고 불린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된다.

수단, 시리아, 쿠르드족 이락, 아프가니스탄 같은 아프리카 북동부와 중동지역에서 몰려든 7천명이 넘는 난민들이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떠나려고 몰려들었다는 그 항구도시 칼레는, 수십 년 전 꿈과 낭만에 대한 기대로 들뜬 동양의 한 젊은이가 미지의 유럽대륙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피안 (彼岸)의 도시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도버해협을 반대방향으로 건너려고 수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기차나 화물차에 숨어들고 있다는 현실이 '삶이란 참으로 미묘한 것’이라는 느낌을 안겨준다.

 

야심한 가을밤에 잠은 잊어버리고, 생각은 기억을 타고 시간을 거스른다.

“1985년 5월 첫째 토요일 새벽동이 틀 무렵, 도버(Dover) 해협을 가로지르는 카페리(car ferry) 뱃전에 서서, 어둠이 걷히며 천천히 희뿌연 윤곽을 드러내며 다가오는 유럽대륙, 프랑스 칼레 해안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벅차 오르는 희열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전율을 느낀다. 영화에서나 보며 동경하던 프랑스, 유럽대륙을 이렇게 오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다. 더구나 아내와 딸과 함께, 차를 배에 싣고서 말이다.

‘그래, 시작이다. 오늘 이렇게 미지의 대륙에 첫발을 내딛는 것처럼 앞으로 세계를 가슴에 품고 더 넓은 세상으로 부딪쳐보자’라는 각오를 다지며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마신다.”

 

한때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학원과 프랑스문화원을 기웃거리고, 샹송(chanson) 가수의 매력적인 음성과 프랑스 영화를 흠모하던 젊은이가, 그런 동경의 나라가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의 감격을 메모했던 글이다.

바로 옆 나라 영국에서 근무하면서도, ‘차를 어떻게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며, 영어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는 프랑스에서 어떻게 숙소를 예약하고, 또 오른쪽 운전대의 영국 차를 끌고서 통행방법이 다른 유럽대륙에서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을까’ 하는 온갖 가지 걱정들과 함께, 가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등으로 1년 여동안 유럽대륙 행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3일간의 연휴기간(May Day Bank Holiday)에, 중세 르네상스시대의 고성(古城) 유적이 많고 프랑스의 정원이라 불린다는 프랑스 중서부의 루아르 계곡(Loire Valley)지역을 가보기로 하고, 그렇게 갈망하던 유럽대륙으로의 첫 자동차 여행을 나서게 된 것이다.

<도버 성에서 내려다 본 카페리 부두>

그렇잖아도 도버해협을 건너서 유럽대륙으로 가는 길목의 지리도 익힐 겸해서, 그 동안 몇 차례 런던 동남쪽으로 약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도버를 다녀왔다. 영국에서 제일 오래된 성으로 ‘영국을 여는 열쇠(key to England)’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도버 성(Dover Castle)의 성벽 위에서, 카페리 선착장에서 차들이 대기하다가 줄지어 배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최단 33.3km에 불과한 도버해협 바다 저편에 있을 유럽대륙은 어떤 모습들일까를 그려보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조심스레 챙겨보던 그 대륙에로의 진입을 위해서 난생 처음으로 배에 차를 싣고는 여객선 객석에 앉아서 새로운 문물과 생활방식들을 보게 되었으니, 그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말로만 듣던 그 도버해협을 가로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배가 프랑스 쪽 칼레(Calais)항에 도착하자 자동차를 몰고 부두로 올라서면서, 조심스레 노란색 차량진행방향 표시를 따라 유럽대륙에 처음으로 진입할 때 느꼈던 그 순간의 긴장감과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저 멀리 지평선너머 구름 속까지 죽 뻗은 것 같은 프랑스의 널찍한 고속도로와 평야가 이어지고, 회색 빛 석재가 아름답게 조화된 도시들이 초원과 돌담, 양떼들이 연상되는 영국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날 아침, 그렇게 눈앞에 큼지막하게 떠오르던 희뿌연 프랑스 해안가의 모습과 그 때 느꼈던 그 감격은, 늘 지워지지 않는 장면으로 생생히 남아있다.

 

그때의 그 강렬했던 느낌을 되새겨보고 싶어서, 꼭 30년만인 지난해 5월의 가족여행 말미에 도버해협을 거쳐서 잠깐이나마 파리를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도버해협을 다시 한번 건너보면서 그 옛날의 감흥을 되새겨보고도 싶었다. 그리고 비록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이라도 파리의 명소들을 둘러보면, 프랑스에 가본 적이 없는 딸에게는 그 나라에 대한 첫 인상 정도는 가질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카페리 관련 자료를 찾다가 보니까, 그사이 세상이 바뀌어서 영국과 프랑스간 에 해저터널이 1994년에 개통되었다고 한다. 기차에 차를 싣고 도버해협을 건널 수 있다니까, 시간 절약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는 배를 이용하는 방법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포크스톤(Folkestone)에서 출발하는 아침 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도버의 숙소는 취소하고,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그 도시 인근의 가정집에 유숙(留宿)하면서 그 옛날 B&B에서 머물곤 하던 기억도 되살려보았다. 차를 탄 채로 출국수속을 한 뒤, 기차역 주차장에 줄지어 서있다가 안내원들의 지시에 따라 기차에 오르는 것은 카페리와 비슷했다. 달랐던 점은 기차 안으로 오른 후에도 계속해서 주차된 차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포크스톤 역에서 유로터널 셔틀 기차에 오르는 모습>
<유로터널 셔틀 기차 내부>

 

줄지어 열차의 뒤쪽으로 올라가서, 주욱 앞으로 나아가 주차할때까지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는 약 50km 거리의 해저터널을 수면 아래로 최대 75km 깊이를 달려서 약35분만에 도버해협을 주파하는 새로운 경험에 신명나 있을 때도, 그 피안의 도시에서는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있는 사람들과 정글이라 부르는 난민촌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1999년에 프랑스 적십자사가 칼레항 부근에 수용시설을 설치하고 이후 여러차례 폐쇄와 이전 등의 숨바꼭질을 거친 모양이었다.

내 삶에 파묻혀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그런 일이었다. 그랬던 그 일, 그 장면이 왜 갑자기 오밤중에 내눈에 들어오고, 새삼스레 옛 생각까지 떠올리게 만들며 아린 마음을 주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들도 하얗게 밤을 지새운 지 며칠되지 않아서 온나라가 떠들썩해졌다. 우리가 앙앙불락하고 산다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아닐진데, 그저 나의 기대,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서로 탓하기에 바쁘다.

이러다가 도버해협을 건너려고 영국행 화물차에 스며들던 그들, 프랑스 칼레의 난민촌이 철거되자 파리 시내에 텐트를 치기 시작한다는 그들, 남의 나라 험준한 산천을 목숨 걸고 헤매는 그들의 일이 우리들의 일이 되어지는 것이나 아닌지 덜컥 겁이 난다.

잠시 후,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우리다. 주어진 순간과 오늘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연약한 인간들인 처지에, 그저 자신의 생각만 옳은 것으로 여기는 '너와 나의 이 독선(獨善)과 욕심'들을 어이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누가 뭐래든, 초가삼간 태우고 남의 나라 떠돌아 다니게 되는 일 만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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