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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이야기] ‘구르미’ 효명세자 흔적 곳곳에 남아있는 창덕궁
정환선 칼럼 기자
수정일 2016-11-01 18:33
등록일 2016-11-01 10:14

개혁군주 정조 할아버지 뜻을 이어 강한 조선 꿈꾼 세자
정환선 창덕궁 길라잡이

[공감신문=정환선 궁궐길라잡이] 최근에 궁궐을 찾는 관람객들이 모 방송국의 인기드라마(KBS의 「구르미 그린 달빛」 /편집자주)의 영향에 힘입어서인지 몰라도 해설을 할라치면 적어도 효명세자(孝明世子)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은 것 같다.

자연스레 해설의 화두도 효명세자(박보검 역/편집주자) 이야기를 양념삼아 길라잡이하기도 한다. 창덕궁은 순조임금 시대에는 주궁이었던 경복궁이 폐허가 되어 임진왜란 후 복구되지 않던 시기여서 주로 세자가 법궁(法宮)인 이곳에서 살았다. 이런 역사 덕분에 효명세자의 흔적이 창덕궁 곳곳에 많이 남아 있게 됐다.

 

효명세자(孝明世子) 이름은 일(日)자에 대(大)자를 붙인 햇빛 대(旲) 자로 정하여 ‘이영(李旲)’으로 효명(孝明)은 효성이 지극하고 영민하다는 의미다.

살아 생전 왕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아들이 왕위에 올라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되어진 덕종, 원종, 진종, 장조, 문조(익종) 다섯 분 중 한 분이다.

불에 타버린 어진, 상상 복원한 익종어진

인조의 아버지 원종을 제외하고는 다 세자출신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효명세자는 생전에 왕위에 오르지 못한 추존(推尊) 왕임에도 불구하고 조선 27대 임금 중 죽은 뒤에 공덕을 칭송하여 주던 이름인 ‘시호’(諡號)가 119자로 가장 길다. 종묘(宗廟)에 부묘(祔廟)할 때 영녕전에 모시는 관례를 깨고 정전에 유일하게 위패가 배향된 왕이다. 묘호(廟號)는 헌종 아버지 자격으로 ‘익종(翼宗)’ 으로, 그의 양자인 고종이 대한제국황제로 오르면서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재 추존되어 그 위상을 알 수 있다.

세자로서 조선의 개혁과 왕권 및 국방력의 강화를 주도했던 큰 그릇의 정치가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왕릉의 이름인 능호는 ‘수릉(綬陵)’이며 현재 신정왕후와 합장릉 형태로 구리시 동구릉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창덕궁에서의 효명세자의 흔적을 찾아 길라잡이하면,,,,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에서 1809년 순조와 순원왕후의 장자로 태어났다. 이마가 튀어나온 귀상이라고 전해지며, 그날로 원자로 삼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왕들이 후궁 소생인 반면 정비 소생인 대군으로 태어난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가 숙종을 낳은 이래 150년 만에 일어난 크나큰 경사이다.

1812년에는 희정당(숭문당)에서 왕세자로 책봉돼 책봉식을 치렀으며, 1817년 성균관에 입학하여, 입학례를 성균관에서 치렀다. 1819년에는 경헌당에서 관례를 치른 후 덕인(德寅)이라는 자(字)를 받는다. 그리고 그해 풍양 조씨(후일 조대비가 되어, 고종 즉위 당시 궁의 가장 큰 어른으로 대원군과 협의하여 고종을 왕위에 올림)와 가례(嘉禮)를 올렸다.

왕세자입학도첩(王世子入學圖帖)

궁의 서문인 요금문은 박규수와 교유하러 다니던 문이고, 관물헌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중희당은 세자들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동궁 역역에 속해 있는 전각으로 주로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스승들과 서연을 펼치던 곳이다. 후원으로 들어가면 의두합과 운경거를 만날 수 있는데 세자가 강성한 조선을 만들고자 하는 꿈을 키우고자 주로 독서와 사색을 하던 공간이었다.

의두합(倚斗閤) 정면을 보면 대청이 있고 가운데 기오헌(奇傲軒)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기오와 의두의 글자 의미를 잘 살펴 생각해보면 할아버지 정조에게 기대고 의지하여 큰 뜻을 펼치고자하는 의미가 실려 있으며 건물 뒤편으로 나 있는 길이 규장각과 연결되어 있어 개혁군주 할아버지 정조를 닮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운경거(雲磬居)는 한 칸 반의 건물로 하단부에 구멍이 있어 공기가 잘 유통될 수 있어 악기와 책을 보관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의두합과 운경거

폄우사(砭愚榭)는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건물로 온돌방이 있어서 겨울에도 세자가 즐겨 찾아 공부를 하고 시를 지었던 공간이다. 궁궐지에 실린 <폄우사에서 정묘어제운을 경차하다> 사영 시 중 추월(秋月)을 소개해 본다.

 

“구슬 같은 이슬이 뜰에 내리고 달은 막 솟으니

온 하늘 아래가 참으로 똑같이 밝구나

영롱한 세계에 화풍마저 일어나니

늦은 밤 글 읽기에 밤기운 알맞도다“

 

폄우사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에 속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잘 나타낸 것 같다.

 

현재 창덕궁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는 숙종 17년에 지어진 능허정(凌虛亭)이 있으나,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능허는 ‘허공에 오르다’라는 의미다. 취규정에서 연경당 쪽으로 내려오다 잠간 멈추면 천성동(빙천)지역에 이르고 여기서 눈을 위로 올려다보면 산 정상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정자가 보인다. 낙엽지고 난 후 나뭇가지들 사이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잘 보인다. 효명세자가 이곳에 올라 지은 시 능허정즉사(凌虛亭卽事)가 전한다.

동궐도에 나타난 능허정 천성동 효명세자 예필

천성동 지역은 지금은 해설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는 곳으로 동궐도에는 이곳에 민간신앙의 흔적이 보이며 백운사(白雲舍) 주변에 예필(睿筆)이라 하여 왕세자(王世子)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썼다고 보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 2곳에 중국 당(唐)나라의 자연파 시인 왕유(王維)의 가을날 초저녁 비 온 후의 산촌풍경을 그린 오언율시(五言律詩) 산거추명(山居秋暝) 중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를 비추고 맑은 샘물은 바위 위로 흐른다는 의미인 “명월송간조(明月松間照) 청천석상류(淸泉石上流)”가 아래쪽에 물소리가 아름다운 의미의 '천성동(泉聲洞)'이 윗쪽 그림에 나타나 있다.

 

세자는 1827년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게 되는데 이 기간 중 안동김씨의 세도 정치 견제와 왕권을 강화하고자하는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고자 예악(禮樂)정치 카드를 꺼내든다. 그리하여 1828년에는 후원에 사대부의 집을 본 따 건립한 연경당(演慶堂)을 짓는다. 연경당은 사랑채의 당호이면서도 건물군 전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연경’이란 당호는 효명세자가 직접 지었는데 '경사스러움을 연출하다' 또는 ‘경사가 널리 퍼진다’는 뜻이다.

연경당

이곳에서 세자는 아버지 순조를 위한 왕권 강화 계책이 숨어 있는 연향을 열게 되는데 순조에게 신하들이 술잔을 올리면서 춤과 음악이 함께하는 의식을 펼치게 된다. 이 때 추는 춤이 정재인데 세자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춘앵무〉와 〈무산향〉이 추어졌다. 하지만 펼쳐 놓았던 꿈을 펼치기도 전에 짧은 생애를 마감하여야만 하는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원보감과 열성어진에 실린 익종어진

희정당 서협실에서 청정 4년만인 1830년 4월 잦은 기침을 하던 세자가 갑자기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내의원에서는 향리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전 승지 정약용까지 불러들여 갖은 노력을 했지만 별 효험이 없어 5월 6일 새벽 22세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되었다. 그 후 효명세자의 아들인 헌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익종으로 추존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왕의 사후에는 궐내각사의 선원전에 어진(御眞)을 제작하여 보관하면서 다례(茶禮)를 올리게 되는데 이곳에 보관했던 익종어진은 여러 단계를 거처 우여곡절 한국전쟁 때 북한군의 약탈을 피해 임시수도 부산으로 옮기게 되는데 1954년 12월 부산 국악원 창고에 보관 중인 어진이 사진처럼 대화재로 불타 일부만 남게 되어버려 불에 탄 문화재의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세자 서연회강하는 모습

해설을 하다 보면 이런 말씀은 꼭 드려야겠다고 마음이 앞서지만 다양한 관람객들의 욕구를 다 만족시켜 드릴 수는 없어 송구스런 마음이 앞선다. 궁(宮)과 후원(後苑)을 찾는 분들이 주로 가볍게 심신을 가다듬는 힐링이나 역사연구, 건축물 연구, 때론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한 목적 등 매우 다양하다.

우리 문화재에 관심을 갖고서 그것을 아끼고 때론 함께 공유하고 나누고자 하는 분들이 많기에 열심히 성심성의를 다하여 해설을 하고 있다. 나의 해설이 부족하지만 다녀가신 많은 분들이 만족하고 기분 좋은 행복한 하루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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