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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지해수 칼럼] 사랑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짐의 감사함
지해수 칼럼 기자
수정일 2018-07-23 18:44
등록일 2018-07-23 09:22

-‘사랑의 입맞춤에 /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

밥상을 마주하고 /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 소

근소근 정겨운 /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나 짧다’

(박노해 시 <신혼일기> 중에서)


 

[공감신문] 얼마 전 한 소설을 읽었다. <죄와 벌>, <지하생활자의 수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이란 소설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다녔었다. 연극 수업에서 빠질 수 없는 희곡 작가는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 그는 희곡 외에도 수많은 소설을 남기기도 했다. 또 그 유명한 ‘메소드 연기’ 역시 러시아의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이다. 나에게는 러시아의 문학이 그리 멀거나 낯설지 않았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1821년 11월 11일- 1881년 2월 9일

러시아의 문학은 정말 매력적이다. 한 번도 그 나라에 가본 적이 없지만 문학을 살펴보면 꽤 쓸쓸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아니 한없이 나약한데, 심지어 작가 스스로도 그러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다른 세계의 작품들보다 더욱 와 닿는 기분이다. 사실적인 러시아의 문학 세계는 작가들의 솔직함 때문에 더욱 발현되는 느낌이랄까.

그중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더욱 그렇다. 난 그의 성격을 조금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심지어 그의 처녀작인 <가난한 사람들>을 읽어본 후 감히, 내가 예상한 것에 확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돈’은 무진장 중요한 테마였으리라는 것. 그는 돈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지만, 궁극적으로 부자가 되고 싶진 않았을 거라는 추측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그는 돈에 열등감이 많은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가 쓴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가난한 남자 주인공이 가난한 여자 주인공에게 편지를 쓰며- 가난해서 겪는 굴욕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것은 겪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통찰력 있는 시선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하는 말 같았다. 실제로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돈 때문에 글을 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내가 생각하는 그는, 돈 이외에 다른 가치를 중요시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랑, 진실, 욕망, 그리움- 등 수많은 가치들이 세상에 존재함을 아는 사람이었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같아 보였다. 그런데 왜 그가 돈에 열등감을 가지는 거냐고? 돈이 없다면- 한마디로 가난하다면- 그 소중하고 귀한 것들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나.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문으로 떠나간다고. 이것은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련하고 흔하고 비참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가난 때문에 으깨어지는 두 사람의 사랑이 나온다. 가난은 두 사람의 사랑을 상하게 만들었다.

= <의사 가셰의 초상> 빈센트 반 고흐

소설 속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돈을 구하기 위하여 어떤 굴욕을 맛보아야 하는 지 그녀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 그들의 가난은 지금처럼 ‘상대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나중에 그녀는, ‘종이 살 돈’이 없어질 지경이라고까지 한다. 여기에 남자는 이런 답을 쓴다.

‘저는 제가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하겠습니다. (...중략...)

당신이 스스로를 못살게 굴도록 내버려두지 않겠어요. 스스로를 망치려는 당신의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나의 천사님, 돈은 반드시 빌려옵니다. 돈을 꾸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말겠습니다.’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답장을 보내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이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은 나이가 어리며, 남자 주인공은 50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며, 그 역시도 그녀를 진심으로 아낀다. 그런데 ‘나’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어서 비참한 기분이 든다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겠다니. 너무하지 않나. 아마도 그는 연애에 서툰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연애란 사치였을 지도.

= <라부양의 초상> 빈센트 반 고흐

이 소설은 러시아 최초의 도시 소설이다. ‘가난’이라는 현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사회 풍경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마치 샤를 보들레르의 시처럼- ‘악의 꽃’같은 느낌이 진하다. 진한 악의 꽃의 향기가 그리운 성향이 무지 진하다.

200페이지 남짓한 이 짧은 소설을 읽는 동안 정말 슬픈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가난하다고 느껴본 적이 있지만 이런 생각에까지 깊게 빠져본 적이 없었다. 이를테면 존재를 숨기려들거나 괜한 열등감을 가지는 모습 같은 것. 그리고 또 하나- 정말 중요한 모습이 있다. 나로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것. 그리고 그 소소한 행복이 나에게 있었더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소설 초반부 내용을 보니, 남자가 여자에게 내의를 선물한 모양이었다. 좋아하는 남자에게서 따뜻한 선물이라니! 그러나 여자는 기뻐하지 않는다. 그녀의 반응은, 오히려 선물한 남자를 김빠지게 만들기 충분해 보인다. 있는 것을 왜 또 샀느냐, 돈을 너무 허투루 쓴다, 그 헤픈 씀씀이를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다. 이미 나를 사랑하는 거을 알고 있는데 굳이 이렇게 선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독자 여러분들은 상상해보셨으면 한다. 아니, 사랑하는 이에게 내복을 한 벌 선물했기로서니 이런 반응이 날아온다면 어떨까? 나라면 너무 섭섭해서, 앞으로 내가 껌 한통 사주나봐라! 하고 토라질 것만 같다.

그런데 그녀는- 여기에 한마디를 더 덧붙인다.

‘당신이 선물을 주실 때마다 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 아세요. 선물을 장만하시느라 당신이 어떤 희생을 지르시는지 잘 알고 있거든요.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제발 부탁이에요. 이렇게 빕니다.’

이 소설이 슬픈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그들이 서로의 호의를-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상대방의 사랑의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버겁다는 것-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그녀는 그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기가 돈을 아끼라고 말해놓고, 내의 같은 것은 선물하지 말래놓고 돈이 너무 없어서- 요즘말로 ‘역대급’이라 죽을 지경이라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상대방의 호의가 절실하지만 그것이 동시에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들의 사랑뿐인가? 모든 관계-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이 소설 안에서는 그렇게 느낀다. 생각할수록, 너무 마음이 아팠다.

=영화 <러빙 빈센트> 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하는 사랑의 모습은 어떠한가.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한다, 고 생각한다. 상대방은 나에게 무얼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생각한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 계산하고 그것이 남녀관계에서도 당연시 여겨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러하다. 내가 무언가를 해주었을 때 상대방이 환하게 웃으며 기뻐할 수 있던 것이- 행복한 것이었구나! 친구가 나에게 ‘너 이번 시집 잘 되었으니 맥주 한잔 사라!’고 했을 때, 내가 와인을 한 병 사더라도 친구는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서로에게 부담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줄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음에 대한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인식되어지는 것에 대한 행복을- 그전엔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

그래서 이런 의문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계산하려 따지려드는 요즘과 비교해보았을 때- 종이살 돈이 없어 편지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바렌까 커플 중 과연 누가 더 ‘가난한 사람들’인지 말이다.

모든 이에게 사랑과 선물을 나눌 수는 없다. 하지만 무언가를 주고 싶은 누군가가 생겼을 때에, 서로에게 계산 적인 마음이 없이 지갑은 몰라도 마음만은 풍족하길 바랄 뿐이다. 아마도 그럴 수 없었을 것 같았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젊은 날에 심심한 위로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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