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염보라 기자=지난달 14일. 금융감독원은 손해 미(未)확정 사모펀드에 대해 사후정산 방식의 분쟁조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전날 열린 국정감사에서 윤석헌 금감원장이 "손해액 확정 전이라도 판매사들이 합의한다면 추정 손실액을 기준으로 손해액을 선(先)지급하는 방향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지 하루 만에 나온 '초고속' 발표였다. 윤 원장의 한 마디에 '손실이 확정돼야 분쟁조정이 가능하다'는 금감원의 기본 원칙은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너무 섣부른 발표"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판매사들의 참여 여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기' 식 발표로 판매사들에게는 곤혹스러움을, 투자자들에게는 희망고문만을 안겨줬다는 지적이었다. 

 

손해 미확정 사모펀드에 대한 분쟁조정에 긍정적 의사를 밝힌 판매사로는 현재 우리은행·KB증권 정도가 언급된다. 두 판매사 모두 '라임펀드'에 한정 지었다. 다른 판매사들은 눈치 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배임 이슈가 있는 데다, 선례를 만드는 데 대한 부담감도 상당해서다. 게다가 윤 원장이 "분쟁조정안 수용여부를 금융사 경영실태평가 결과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자칫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판매사들의 참여율이 저조할 경우 결국 피해를 보는 건 희망에서 실망으로 의도치 않은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투자자들이다. 투자자들이 넓은 아량으로 기다림의 미학을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업무 과중을 호소하는 금감원이 속도감 있게 제대로 분쟁조정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과욕(過慾)'과 '과속(過速)'.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취재하면서 기자의 머릿속에 늘 맴돌았던 키워드다. 제반 준비가 미비한 상황에서 ‘펀드 시장 활성화’를 외치며 섣부르게 문턱을 낮춘 금융당국의 ‘과속’ 행보는 실적만능주의에 빠진 판매사들의 ‘과욕’과 만나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 사태를 수습하고자 하는 금감원의 행보를 보면서 안타까운 건 역시나 과욕과 과속의 키워드가 읽힌다는 것이다. 흔히들 ‘디테일이 생명’이라고 한다. ‘1%의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무언가를 추진할 때는 심사숙고의 자세로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다. 욕속부달(欲速不達). 빨리 하려고 욕심을 내면 오히려 미치지 못하는 법이다. 지금 금감원이 경계해야 할 건 '무뎌진 칼날'이 아니라, 과욕과 과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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