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사태로 국제적 우려 대상이 된 홍콩 시위...장기화 이유부터 근본적 원인까지?

[공감신문] 현재 국제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홍콩 시위’다. 시위가 장기화와 동시에 격화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시위는 지난 3월말 시작해 6월부터 대규모로 확산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홍콩 시위는 왜 발발했으며, 현재의 상황은 어떠한 것일까? 오늘 시사공감에서는 홍콩 시위에 대해 총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홍콩 시위의 발단

홍콩시위의 발단은 지난해 2월, 대만에서 벌어진 한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대만으로 여행을 떠난 홍콩인 커플 남성이, 자신의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는 시신을 대만에 유기한 채 홍콩으로 도피 귀국한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홍콩 경찰은 그를 체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홍콩은 현재 자국의 영역 내에서만 국가의 입법, 사법 집행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다. 결국 그는 여자 친구의 돈을 절도한 죄와 돈을 세탁한 것에 대한 처벌만을 인정받아, 단 29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홍콩 정부는 그를 대만으로 인도하길 원했지만,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홍콩 정부는 지난 4월 3일,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을 추진하기로 한다.

하지만 홍콩 시민들이 이 법안 발의가 추진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시위가 시작됐다.

홍콩의 국기
홍콩 국기

시민들이 ‘홍콩 송환법’을 반대하는 이유

홍콩 정부가 추진하려는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되면,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은 국가에도 범죄인을 보낼 수 있게 된다.

홍콩 시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이 법안을 반체제 인사 및 인권 운동가 등을 중국 본토로 송환하는 데에 악용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

/ 베이징 관광국
아편전쟁의 결과로 홍콩 섬은 영국의 크라운 식민지가 된다. / 베이징 관광국

홍콩과 중국, 어떤 관계일까?

아편전쟁이 1840년부터 1842년까지 지속된 결과, 홍콩 섬은 영국의 크라운 식민지가 된다. 홍콩은 당시 중요한 식민 무역항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홍콩은 국제 금융 중심지로 떠오른다.

1984년, 중국과 영국은 홍콩의 반환을 약속하는 공동 선언에 성명하게 되고, 1997년에 홍콩은 중국에 반환된다. 이때, ‘하나의 국가, 두 체제’ 원칙에 따라 ‘홍콩특별행정구’로 인정받게 된다. 또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에 의해, 자본주의 체재의 유지 및 독립적인 사법부 보유, 자유 무역 등을 보장받는다.

장기화되고 있는 홍콩 시위

첫 시위는 2019년 3월 31일, 홍콩 경무처 추산 5200여명, 주최자 추산 1만 2000명의 규모였다. 이후 6월에는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뜻을 모아 거리로 나오게 된다.

그러자 홍콩 경찰들은 시위를 ‘폭동’으로 간주, 최루탄을 사용하는 등 과잉 진압에 들어간다.

결국 지난 9월, 송환법은 철회됐으나 시위대의 세부 조건들이 수용되지 않아,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 국경일 벌어진 시위에서도 대규모의 무력 충돌이 있었다.

홍콩 시위,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국제 사회 전문가들은 이번 홍콩 시위 장기화의 이유를 ‘송환법 반대’가 아닌 ‘홍콩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 축적’으로 꼽고 있다.

실제로 시위대가 요구하는 사항 중엔 송환법 공식 철회 외에 행정장관 직선제 등도 포함돼 있다. 또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했던 것에 대한 철회 및 체포된 시위대의 석방 내용도 포함한다.

홍콩은 국제적으로 세계적인 금융 도시이지만, 살인적인 부동산 시세 및 물가 등으로 많은 내부 마찰을 빚어왔다.

특히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및 주거 환경에 관한 이슈는 오래된 사회 문제였다.

중국 톈안먼(천안문)과 톈안먼 광장/ 게티이미지뱅크
중국 톈안먼(천안문) 광장/ 게티이미지뱅크

홍콩 시위는 ‘또 다른 톈안먼 사태’, 톈안먼 사태가 뭐길래?

일반적으로 ‘톈안먼(천안문) 사태’는 1976년보다는 1989년에 발생한 사건을 지칭한다. 6.4사건이라고도 불리는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4일 톈안먼 광장 등지에서 일어난 민주화 요구 시위를 정부가 무력으로 유혈 진압했던 사건이다.

국제적십자협회는 이 톈안먼 사태에서 무려 26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이번 홍콩 시위에서도 학생이 경찰의 실탄에 맞고, 어린이와 노인이 무차별적으로 체포 당하고, 한낮에 외국인이 최루탄에 맞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홍콩 시위가 ‘톈안먼 사태’처럼 대규모 유혈 사태로 번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홍콩 도심은 주요 버스 노선 및 지하철 역 등이 폐쇄됐으며 거리는 물론 캠퍼스 내부가 불길에 휩싸이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 PIXABAY
홍콩의 야경/ PIXABAY

장기화된 홍콩 시위는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홍콩 주산업 중 하나인 관광 및 금융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달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했던 ‘항공대란’이후, 관광객은 더 감소해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만큼이나 추락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시민들의 안전이다. 홍콩 정부의 계속되는 과격한 진압은 반정부적인 감정을 더욱 격앙시킬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에서는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며, 홍콩의 기본적 자유를 억압하는 데에 책임이 있는 자에게 미국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안’이 하원 만장일치로 통과했으며, 상원 표결을 앞두고 있다. 이는 곧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물론, 국제 정세 전반에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무고한 시민들이 더 피를 보기 전에, 국제 문제 전문가들과 세계 시민들이 현명하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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