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지해수 칼럼니스트=세상이 변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다. 그냥 시간이 흘러가고 있기에 하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그냥 유행이나 돈 벌 수 있는 수단-혹은 돈을 쓰는 재화나 서비스, 넓게 말해 요즘 말로 ‘떡상’하는 산업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진짜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나보다 먼저 느꼈을 것 같은 부류는 나의 선배들, 나보다 한 세대 쯤- 그러니까 10살 정도 많은 사람들도 아닌, 차라리 우리의 부모 세대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익숙하던 사회가 한 순간에 변화함을 경험한 세대들이며(물론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하여), 차라리 이 현상에 대하여 우리와 공감해주기 쉽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68혁명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창기 스타일, 미국의 비트 제너레이션의 문학을 공감할 수 있던 이들이라면 지금의 변화를 미세하게 느끼고 대응하기 쉬울 거다.

영화<킬 유어 달링> 중에서

사실 대응이라는 말은 없다. 순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거의 갑-을 관계 중에 을의 입장이며, 그런 입장이라면 자신이 속한 환경과 사회의 시스템에 순응해야만 한다. 그런데 대부부의 20대 후반과 30대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 부모는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았기에 그들이 다소- 그러한 감정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차별’이나 ‘한계’는 우리보다 훨씬 컸다. 그에 대해선 가슴 깊숙이 존경심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착각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것을 겪어냈을 때의 결과물이 다른 것이다. 이전의 대한민국은 무언가가 보장되던 사회였다. 이를테면 어떤 대학교에 나오면 이 정도의 삶이 있을 거야-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그런 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시시각각으로 세상은 변화하며, 심지어 우리의 친구들 역시도 그러한 정보들에 변화한다. 마치 계절이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서 변화하는 것과도 같다. 기성세대가 이른바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방식도 그렇게 바뀌어야 한다. 예전처럼 어른들의 말이나, 어떠한 노력이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불안한 이들이, 어떤 식으로 ‘사고’하는지를 공감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일지언정, 차라리 어떤 면에선 훨씬 공감의 포인트가 많은 것도 같다. 그것은 ‘불안감’이라는 정서적 감정이다. 불안은 사람들 움츠러들게도 만들지만, 반대로 움직이게 만든다. 만일 오늘의 당신이 조금 안일하게 살아서 당장 다음 달의 월세를 걱정하게 된다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열심히 사는 일 밖에 없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다.

영화<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중에서

사실 ‘스트레스’는 처음부터 부정적인 호르몬이 아니었다. 실은 전문가들에 의하면 ‘엔돌핀’ 역시도 스트레스 영역에 속하는 호르몬이다. 왜냐하면 사실 스트레스 호르몬 작용이 유발하는 것은 대부분 ‘긴장’인데, 긴장할 때 우리의 신체는 알아서 엔도르핀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에 대한 열등감을 갖는다. 그것은 얼마를 가졌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조금 가진 사람이나 많이 가진 사람 모두, 열등감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정말 주관적인 차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돈 탓’을 하기 좋아한다. 그것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원하고 노력한다고 가질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변했다.

얼마 전 어느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았는데, 집 안에서 월 몇 백을 벌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제목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제목의 그 어떠한 포스팅 글이나 영상을 이전에 본 적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방법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줄 리 없기 때문에. 근데 어쩌다가 자동 재생으로 보게 된 그 영상에 난 무릎을 치고야 말았다. 그는 지금 현 시점에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은 물론이거니와 고등학생 정도면 충분히 핸들링이 가능한 알바들이 매우 많다고 소개했다. 그런 일들에서 학력을 요구할 수 있는데, 어쨌든 본인이 잠을 줄여가며 열심히 살면 한 달에 최소 백 만 원 이상의 수입을 더 벌어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엄청난 공감이 일었었다. 솔직히 일을 찾으려면 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고 느낀다. 물론 그 일들이 본인 성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건? 그건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 것이다. 성에 차지 않을지 언정 뭐라도 해보아야 한다. 그 시간에 차라리 정말 사랑하는 애인이 있어서 일을 제쳐두고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감히 그것도 권유해보고 싶다. 하지만 애인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면 차라리 나를 쓰고자 하는 곳에 무심하게 들어가 당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제목에 ‘개런티’라는 말을 썼다. 우리말에서는 부가 수입의 느낌으로 쓰이지만, 사실 영어에선 ‘보장 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또 누군가는 ‘장담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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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금 누구도 쉽게 개런티guarantee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안정적으로 누리게 된 가정환경과 경제적 부가가치를 놓고-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살아라’라고 개런티해선 안된다. 아니, 해도 되지만 사실 그런 대상이 대부분 본인들의 자녀 일텐데- 아마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젊은 세대들의 경우, 이러한 기성세대의 말을 너무 잘 듣거나 너무 안들어서도 안된다. 중요한 것은 판단을 하는 것은 본인이요, 그들의 개런티가 당신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빠르게, 심지어 어떤 식으로도 예측이 불가하게 변화하고 있는 현실이- 한편으로는 또 다른 관점에서 멋진 것도 같다. 삶을 즐기는 방식과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 심지어는 부자가 되거나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양식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날카로운 인지능력과 센스다. 다양함은 매우 매력적이고 필요한 것이지만, 선과 악이 공존하듯- 늘 ‘그러함’과 ‘그러함’을 꾸며내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기에...

톨스토이는 자신의 소설에서 젊은이들을 이야기하며, 통상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계층’이라 표현했었다. 젊은이들은 어떠한 시도나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주변에서 보아온 것들로(아마도 괜찮아 보이는) 세상에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 지금 그런 젊은이가 있다면- 어서 직감적인 센스를 길러 양 쪽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연습을 해야할 것이다. 심지어 젊은 당신이 따르는 롤모델 같은 저 이 역시, 시대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한 두 번의 큰 도박 같은 모험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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