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혐의 고소후 8개월째 피고소인 하나은행 대상 조사없어…‘불완전판매 넘어 사기 의혹’ 밝혀질지 주목

▲   지난달 21일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 피해자들이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염보라
▲   지난달 21일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 피해자들이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염보라

  


2008년 키코(KIKO) 사태와 2020년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 대규모 투자 피해로 수많은 개인과 기업을 절망케 한 이들 사건의 기저에는 공통적으로 ‘불완전판매’라는 키워드가 관통한다. 235개 중소기업을 폐업·구조조정으로 내몰았던 키코 사태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12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오히려 악화했다는 시각이 많다. '라임' '옵티머스'와 같이 기획 또는 운용 단계에서 '사기성'이 엿보이는 펀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까지, 다양한 피해자들과 만났고 그들의 눈물을 봤다. 공감신문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이슈가 되지는 않았지만 피해자들이 사기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펀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를 집중 조명한다. 이를 통해 대중이, 미디어가 이 사건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감시해야 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편집자주>


 

[공감신문] 염보라 박진종 기자 = 사모펀드 문제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투자자들은 펀드 운용사와 판매사의 투자자 기망과 불완전판매에 할말을 잃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최고경영자(CEO)는 '라임펀드' 사태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를 사전 통보받았다.

 

4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갈수록 커지는 사모펀드 피해에 대한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하나은행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판매한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는 불완전판매를 넘어 '사기판매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는 판매액도 1500억원에 달한다. 펀드 피해와 관련해 드물게 형사고소까지 이뤄졌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사실상 제자리 걸음이다. 피해자 대표 격으로 78명이 고소한 지 8개월째 접어들었지만 피고소인 조사는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금융피해 관련 시민단체들은 하나은행 종합검사를 진행 중인 금융감독원이 필요하면 조속히 검찰 수사를 직접 의뢰하거나, 종합검사를 바탕으로 하나은행 측을 형사 고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어 주목된다. 

 

◇ "피 같은 자산을 지켜주세요" 청와대 앞 눈물의 호소 

 

"불완전판매로 적당히 때려서 면제부를 줘서는 안됩니다. 피해자를 구제해 '사기' 행위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피해자를 두 번 죽이지 마십시오. 이것은 탐욕이 일으킨 문제입니다. 검찰이 바로 서서 엄정 수사해 진실을 하루 빨리 밝혀주십시오. 국민의 피 같은 자산을 지켜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바람이 쎘던 지난달 21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는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소중한 자산을 묶인 투자자들이 피켓을 들고 모였다. 이중에는 하나은행을 통해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에 가입했다는 A씨도 있었다.

 

A씨는 "하나은행이 불완전판매를 넘어 소비자를 기망한 사기 행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부실 펀드임을 알았음에도 판매를 지속했다는 의혹 제기다. 

실제로 하나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은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13개월 내 조기상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워 홍보했으나, 실사 결과 회수 가능성이 적다고 평가된 채권 비율은 무려 60.3~99.9%에 달했다. 사실상 13개월 내 조기상환이 불가능한 상품이었던 셈이다.

 

A씨는 지난해 7월 10일 금융감독원에 민원신청을 했고, 열흘 뒤인 같은달 20일 이 상품을 판매한 하나은행과 7개 운용사, 총수익스왑(TRS) 업무를 맡은 3개 증권사, 관련 담당 직원 일부를 특정경제범죄법위반(사기)와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행위 등의 금지) 등으로 형사 고소했다.

7개 자산운용사는 현대자산운용, 포트코리아자산운용, 하이자산운용, 아름드리자산운용, JB자산운용, DB자산운용, 라임자산운용, 3개 증권사는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KB증권이다.

A씨 외에 55명의 피해자가 함께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후 지난해 8월 중순 22명이 추가로 고소장을 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A씨는 일이 빠르게 해결될 것이란 희망을 품었다.

  

▲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전국사모펀드사기피해공동대책위가 지난달 2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사모펀드 판매사 강력 제재 및 피해구제 촉구 청와대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염보라
▲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전국사모펀드사기피해공동대책위가 지난달 2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사모펀드 판매사 강력 제재 및 피해구제 촉구 청와대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염보라

 

◇ 고소 이후 8개월째 피고소인 조사 無… 변호인들 "이례적인 일"

 

사건은 서울남부지검에 배정됐다. 이후 검찰은 지난해 8월과 12월 두차례 고소인 조사를 했다. 지난해 10월과 12월 고소인 측은 변호인 의결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피고소인 조사는 해를 넘겨 올 2월 4일 현 시점까지 한 차례도 검찰 측에서 진행하지 않았다. 변호인들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통의 경우 불기소·기소 판단까지는 고소장 제출 이후 3개월 정도 소요된다는 설명이다.

 

피해자 측 변호인 신장식 민본 변호사는 공감신문과 통화에서 "형사소송의 경우 통상적으로 3개월 이내에 완료되는 게 일반적"이라며 "라임펀드와 옵티머스펀드의 경우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는 데 비해 다른 펀드에 대한 수사는 비교적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변호사 역시 "빠르면 1~2개월 내에 끝나기도 한다. 사안이 복잡하긴 하지만 고소 이후 8개월째 접어들었는데 아직 피고소인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건 이례적"이라며 "보통 고소인 조사, 증거 수집, 피고소인 조사 순서로 한다고 가정하면, 증거수집 단계에서 시간이 지체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사건을 배정받은 남부지검 박배희 검사 측은 공감신문과 통화에서 피고소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인사이동이 있었다. 현재는 사건을 검토 중인 상황"이라고 짧게 답했다.

이와 관련, 고소인 변호인들은 "(검찰 인사이동 등 외부요인) 그렇다고 해도 8개월째 피고소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설명이 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 하나은행 종합검사 금감원… 2분기 '제재심' 결과 주목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한 사이 금융감독원은 '나름의 속도'를 냈다. 여기에는 국정감사의 힘이 컸다. 지난해 10월 금감원에 대한 국감에서 국회 정무위원회 정의당 배진교 의원 등은 하나은행에 매출채권 돌려막기 의혹 등을 제기하며 윤석헌 금감원장에게 빠른 조사를 압박했다.

금감원 등에 따르면 금감원 일반은행국 검사2팀은 지난해 10월께 하나은행에 대한 종함검사에 들어가 올 2분기 내 제재심의위원회 개최를 목표로 현재 막바지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금감원은 이 펀드를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하나은행 투자상품부 B씨에 대한 서면조사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피해자들이 '핵심' 인물로 주목하고 있는 인물로 피고소인 명단에 포함됐다. 펀드매니저 출신의 B씨는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지기 직전 하나은행을 퇴사해 현재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펀드 피해자들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대검찰청, 법무부, 국민권익위원회, 국무총리실 등에도 성명서를 제출했다. 24명 정도가 참여했다. '금감원은 하나은행에 대한 검찰 고발을 신속히 해야 한다'는 것과 '제재심 발표를 신속히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A씨는 "처음부터 투자 목적에 반하는 투자 대상에 투자가 돼서 원금을 회수 불가능한 상태로 만든, 사실상 사기 행위"라며 "국민을 현혹시키는 설명으로 국민적 재산에 손실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A씨는 또 "하지만 실질적 증거가 확보되지 않으면 '불완전판매'에 그칠 뿐이다. 실질적 증거 확보를 위해 금감원과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 및 조사를 펼쳐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해 주시길 바란다"며 "확실한 수사와 조사로 명백한 증거를 찾아내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해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 하나은행 을지로 본점     
▲ 하나은행 을지로 본점     

 

고소인 측 신장식 변호사는 공감신문에 "피해자 입장에서 사기냐 아니냐의 차이는 크다"며 "사기가 증명되면 투자금을 100% 환불 받을 수 있고, 불완전판매로 끝나면 과실 비율을 따져 또 판매사인 하나은행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는 아무리 봐도 계약 취소 사유가 있는 사기 사건으로 보인다"며 "(핵심 인물인) B씨에 대한 국내 소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아가 "피해자들의 피 눈물을 생각한다면 빠른 강제 수사와 피고소인 조사 등을 통해 증거 인멸이나 핵심 인물의 도주 우려를 막아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공감신문이 취재한 국회 정무위 의원실 관계자 역시 "피해자들이 스스로 피해 회복을 위해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계시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면서 "불완전판매의 경우 금감원 조사에서 충분히 밝힐 수 있지만 '사기'는 그 범주를 벗어나는 문제다. 특히 B씨가 현재 싱가포르에 있는 만큼 금감원이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할 필요성이 충분해 보인다"고 말했다.

 


※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환매 중단 사태 개요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는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역 정부에 청구할 진료비 매출 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소개됐다.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CBIM이 채권을 할인 매입한 뒤 지방정부에 청구하는 구조다. 하나은행 PB들은 이탈리아 정부가 파산하지 않는 이상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홍보했고 2017~2019년에만 1500억원 가량이 판매됐다.

2019년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일각에서는 은행과 증권사 직원이 펀드 기획 및 설계단계부터 깊숙이 개입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펀드, 부실 돌려막기 의혹을 제기했다. OEM펀드는 판매사인 금융사에서 자산운용사에 요청해 만든 펀드로, 자본시장법상 불법이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 은행, 증권사 등 금융사의 지위가 막강하기 때문에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OEM펀드를 거부하기 힘들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다수 자산운용사가 설정해 하나은행에서 단독으로 판매했다는 것이 OEM 펀드 의혹의 핵심이고, 사실상 불가능했던 '13개월 내 조기상환 가능'을 강조해 판매했다는 것이 부실 돌려막기 의혹의 주요 내용이다.

 

특히 투자상품부 B씨가 2018년 11월 이탈리아 현지 출장을 다녀온 이후 판매액이 급증한 것을 두고 '고의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해자들 주장에 따르면 2017~2018년 2년간 총 판매액은 300억원 수준이었으나, 2019년에만 1188억원이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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