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박재호 칼럼니스트(부대표)=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급변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기업의 신뢰도는 급변하는 위기 속에 더욱 더 강조돼 왔다. 금융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시대적 과제로 부각됐다. 코로나를 극복한 후 우리는 기업들에게 더 많은 개선을 요구할 것이다. 기업은 이제 투명성과 책임성을 넘어 국민 공감을 얻어야 한다.  

 

국민연금에서 국내주식에 투자한 종목(회사)은 1093개사 130조원이다. 상위 10개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포스코, LG화학, SK텔레콤, 신한지주, KB금융)의 투자액이 전체 절반에 가까운 62조원이다. 국내기업의 상당수는 국민연금이 주주인 국민기업이다. 이들의 투명한 기업경영은 단순한 기업이익을 넘어 국정운영, 국민의 노후자금과도 연결된다. 

 

기업의 투명한 경영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사외이사 제도다. 사외이사는 경영진과 최대주주로부터 독립돼 회사 상무에 종사하지 않는 이사를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해서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도입됐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상위 10대 기업들의 사외이사들에 대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자료를 분석했다.  

 

▲ 국민연금공단  © 연합뉴스
▲ 국민연금공단  © 연합뉴스

 

국민연금이 투자한 상위 10대 기업의 이사회 이사는 총 96명이다. 이 중에 60명이 사외이사다. 회사의 의사결정을 견제‧감시하는 사외이사가 전체의 과반이상이다. 하지만 이사회에 참여한 이들은 회사가 만든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2020년 상반기 10대 기업은 총 65회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사회에서 총 188개의 안건이 상정됐고, 모두 가결됐다. 

 

100% 가결이라는 결과만 보고 사외이사 제도를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10대 기업 중 9개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포스코, LG화학, SK텔레콤, KB금융)는 57회의 이사회를 개최하고, 160개의 안건을 처리하면서 단 한명의 반대표가 없었다. 신한지주의 일부 안건에서 반대표를 몇 표 찾아 볼 수 있었다. 

 

견제와 감시를 위해 선임된 10대 기업의 사외이사 60명 중 57명은 2020년 상반기 단 한 번도 반대표를 던진 적이 없었다.

 

도입 필요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사외이사들의 경력과 겸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먼저, 정계 출신의 사외이사는 견제와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고, 기업과 정치권의 가교창구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다. 이명박 정부시절 고용노동부장관과 기획재정부장관을 지낸 박재완 전 국회의원은 현재 삼성전자의 사외이사다. 이사회의장까지 맡고 있다. 더불어 롯데쇼핑 사외이사까지 겸직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시절 중소기업청장과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낸 김성진 전 장관도 2018년 포스코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견제와 감시가 아닌 정치권 가교창구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이사회에서 중량감에 맞는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겸직이 아닌 사외이사를 여러 곳 맡거나, 사외이사만 맡는 직업사외이사들에 대한 지적도 많다. 

 

 

앞서 언급한 박재완 전 장관은 삼성전자와 롯데쇼핑의 사외이사를 동시에 맡고 있다. 이모 KAIST 경영대학 교수(네이버, GS홈쇼핑), 홍모 울산대 교수(네이버, 서울반도체), 정모 중앙대 경영대학 교수(네이버, 롯데하이마트), 이모 서울대 경제학 교수(현대자동차, 삼성물산)가 같은 경우다.

 

4개 회사의 사외이사를 맡은 인물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낸 이동규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은 현재 현대자동차, 롯데제과 사외이사를 맡고 있으며 있다. 그 이전에 CJ씨푸드 사외이사('11~'14) 오리콤 사외이사('15~'18.3)도 맡은바 있다.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이병국 이촌세무법인 회장도 현재 현대자동차, 계룡건설산업 사외이사를 맡고 있으며 과거에는 LS산전 사외이사를 맡았다. 

 

오모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도 현재 KB금융 사외이사를 맡고 있고, 과거 키움증권 사외이사('10~'12) 모아저축은행 사외이사('18~'20)를 맡았다.

 

김모 전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는 KB금융 사외이사를 맡고 있으며 과거 신한금융투자 사외이사('04~'10), 한국씨티은행 사외이사('15~'19)를 맡은바 있다.

 

사외이사들의 겸직이나 여러 차례 사외이사를 맡은 것이 위법은 아니다. 하지만 한명의 사외이사가 여러 곳을 동시에 견제와 감시한다는 것은 힘들다, 결국 상정된 안건에 대한 탁상 견제‧감시가 전부일 것이다.  

 

국민연금이 주주로 참여하는 국민기업의 사외이사 자리는 가볍지 않다, 제공되는 보수와 복리후생도 적지 않다. 본인의 직업도 있고, 사외이사도 맡고, 또 다른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면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작동된다고 납득하기 힘들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경영진들에게 반대를 던질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이사회가 국민과 기업의 건강을 위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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