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찬란하게 빛났음을 잊지 않을게” - 허승범 <버려질 것들>

허승범 사진작가 /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공감신문 라메드] 정적의 시간. 나아가고자 하지만 멈춰야 했던 시간들. 시들 운명을 앞두고도 활짝 피어나기를 주저하지 않는 꽃처럼, 사그라질 것을 알면서도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고찰. 우주와 별을 닮기를 원했던 사소한 것들에 대해.

<비극>(충청도, 2017), 허승범 作

허승범 작가의 사진은 정적이지만, 사라지기 직전의 아름다운 찰나들을 담고 있다. 나뭇가지에 걸쳐있는 얼음, 깨진 달걀 틈으로 새어 나오는 흰자, 공중에 던져진 유리병, 시들어가는 꽃... 곧 사라질 존재. 투명하게 기억될 존재들에게 살아있었음을 증명하는 사진들. 예술가가 아닌 적이 없지만, 예술가로 인정받기에는 힘든 시간. 청춘의 고뇌가 스며든 그의 시간은 별을 닮았다.

예술가가 아닌 적이 없다

허승범 작가가 처음 잡은 사진기는 외할아버지가 물려준 낡은 니콘 fm2 필름카메라였다. 그의 외할어버지는 사진작가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사진 찍는 것을 사랑했고 어디를 가나 허 작가를 사진기에 담아주었다. 이후 허 작가는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 건축과에 입학했고 2학년 때 사진과로 전과했다. 다소 늦은 시작이었지만, 그는 외할아버지의 사진기를 떠올렸다.

“저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며 ‘예술가’의 긍지를 잃지 않도록 교육받았어요. 대학에서도 우리의 작품에 점수를 매기지 않았지요. 예술가의 창작물을 점수로 평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어요.”

<바다>(속초, 2017), 허승범 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온 허 작가는 ‘예술가의 긍지’에 대한 의심과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자신을 ‘예술가’나 ‘사진작가’라고 소개하면,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온 적이 있는지, 대표작품은 무엇이고 얼마에 팔렸는지에 대한 질문이 돌아왔다. 일부 사람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젊은 작가지망생의 객기로 치부하며 대놓고 무시와 조롱하기도 했다.

“예술가가 꼭 피카소나 반 고흐는 아니잖아요. 누구나 예술적인 마인드가 있는 거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게 예술이라고 시작해요. 그래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그건 의지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허 작가는 예술가에 대한 기준을 테크닉적인 것보다는 진실성과 순수성에서 찾는다. 예를 들어 쓰레기로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소재를 쓰레기장에서 주워오지 않고 일부러 쓰레기를 만들어서 만든다면 좀 더 그럴듯한 작품이 될 수는 있겠지만, 진실성에 오류가 생기는 것과 같다. 그래서 허 작가의 예술적 고민은 진실성을 지키면서 예술적인 표현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상업과 예술의 경계

허 작가는 예술작가로 시작했지만, 현실적인 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예술가에 대한 세상의 편견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큰 장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무시할 수도, 자신의 신념만으로 싸워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작가로서 꾸준히 습작하려 해도 장비, 인쇄, 출장, 모델비 등 제작비의 한계에 부딪혀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게 힘들게 찍은 사진도 판매가 쉽지 않았고 팔리더라도 제작비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죠.”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그는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그는 사진이 갖는 현실 요소에 붓질로 얻어지는 추상적 요소를 합해 새로운 회화 양식을 선보였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처럼 다양한 영역을 접목해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이 있어요. 이런 새로운 시도를 통해 예술의 경계가 넓어지고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다음 전시회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설치나 미디어아트도 접목하고 관객 참여 부분도 고려할 예정이에요.”

<방주>(제주도, 2017), 허승범 作

우주에게 배우다

허승범 작가는 근육이 굳고 빠지는 희귀병으로 4년여 간의 투병 생활을 했다. 목발에 의지해서 생활해야 할 만큼 상태가 안 좋을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명확한 병명을 알 수 없이 상태가 계속 안 좋아질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현재는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지만, 투병의 생활 속에서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은 몸을 회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힘이 들 때, 우주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많이 봤어요. 저에게 있어 가장 많은 영감과 예술적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준 사람은 <코스모스>의 저자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에요. 그의 저서를 읽으며 인간과 우주의 별은 태생적으로 닮은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식이 부모를 닮아가듯, 사람도 우주를 닮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런 생각들이 ‘투명의 존재’ 전시회를 준비하는 모티브가 되었어요.”

허 작가는 올해 봄에 2번의 전시회를 가졌다. 폐업한 니트 공장과 중국집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는 독특한 전시 공간과 함께 작품의 주제 면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었고 그가 세상에 내민 화해의 손길이었다.

“‘투명의 존재’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은 저를 치유해가는 과정이기도 했어요. 투병 생활을 하며 몸이 아픈 것 이상으로 마음에도 상처가 깊었는데, 전시회를 준비하며 인간은 고통마저도 더 의미 있는 것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은 마음에 전시회를 열었어요.”

<무제3>(제주도, 2017), 허승범 作

예술가들의 공동체

허승범 작가는 ‘바운드(BOUND)’라는 예술 단체를 구성하고, 이에 대한 후원과 전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운드는 현실적인 벽에 막혀 활로를 찾지 못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어 습작과 판매를 연결하는 유통 시스템을 만들려 한다.

“‘바운드(Bound)’는 ‘~할 가능성이 있는’이라는 뜻인데, 가능성을 가진 예술가들이 그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갈 예정이에요. 현재 바운드와 함께하는 분들 역시 음악, 영상, 무용, 조형, 설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분들이세요. 다양한 분야의 이들이 뭉쳐서 융합하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바운드는 허승범 작가의 창작 공간인 성수동의 ‘라운드테이블’ 스튜디오에서 주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이들은 내년도 전시 기획을 논의하며 다양한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는다. 이들은 예술이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독단의 공간에 갇혀있기를 원하지 않는다. 대중과 소통하며 효용성을 인정받는 ‘쓸모 있는’ 예술이 되고자 한다.

“제가 힘들 때 친구가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줬는데, 흔한 말일 수 있지만, 당시의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어요. 이 말의 가치를 저처럼 예술과 생계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예술가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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