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강제로 주어진 삶 외에 스스로 의미를 찾을 때부터 시작된다” - 백윤아 <작가노트> 中

순수미술 작가, 백윤아 /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공감신문 라메드] 미술가가 꾸는 몽상의 끝. 내가 물고기의 꿈을 꾸는 것일까. 물고기가 나의 꿈을 꾸는 것일까. 해담(해를 담다)이라는 호처럼 하늘을 유영하는 물고기는 저 태양에 닿을 수 있을까.

“우연히 바라본 하늘은 맑고 파랬다. 날고 싶었다. 어항 속 물고기는 모든 무게로부터 자유로운 듯 그 안을 유영하고 있었다” - 백윤아 <작가노트> 中

해담 백윤아 작가는 감정의 방에 갇혔을 당시, 물고기라는 문을 통해 세상을 봤다. 숨을 쉬듯 당연한 자유의 갈망으로. 그렇게 괴로움이 자신의 의지가 되고 외로움과 공생하는 방법을 배워나갔을 때 물고기마저 풀어놓았다. 이제 빈 어항에 그녀 자신을 채울 차례다.

자유를 향한 갈망

백윤아 작가는 중학교 때부터 패션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리고 파리 의상조합(ECSCP)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백 작가는 좀 더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캔버스에 옮기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몇 날 며칠 동안 그림만 그리는 것에 열중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결석 일수가 쌓이고 학사 경고를 받는 등 대학 생활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백 작가는 결국 파리에서의 대학 생활을 잠시 미루고 예술적인 갈망을 안은 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중학교 때부터 패션다자인만 공부했는데, 스무 살이 되어서야 다른 친구들이 하는 순수미술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어요. 지금 돌아보면 늦은 시작이 아니었지만, 그때는 내면적인 갈등이 많은 시기였어요. 진로에 대한 갈등이 삶 전반에 대한 생각들로 연결되면서 답답했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백 작가는 스무 살 청춘의 과도기에 우울의 바닥에 갇혀 있었다. 그 답답함 속에서 백 작가는 우연히 물고기가 헤엄치는 사진 한 장을 보게 된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아닌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흔한 이미지였다.

“저한테는 그 사진 속의 물고기가 하늘을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없지만,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는 있자나요. 그때부터 물고기가 자유에 대한 매개체가 되었고 물고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하늘을 나는 물고기

Movement_1(2017, 53*53 CM) / 백윤아

그 후 백윤아 작가는 물고기 그림에 전념했다. 미국 뉴욕 파슨스 미술대학교에 입학해 순수미술을 전공했고 재학시절 첫 단체전을 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간 국내외 기관 및 갤러리, 아트페어에서 활발하게 작업을 선보였다.

2016년에 소개한 ‘낙원’ 시리즈로 ‘물고기 작가’라고 불리며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작품 중 일부는 국회의사당 의원실에 보관되었고 그녀의 그림이 그려진 다양한 아트상품도 출시됐다. 2017년 ‘대한민국 창조 문화예술대상’에서 특별상을, ‘세계 문화예술 교류 대상’에서 대상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이십 대 초반에 패션디자인에서 순수미술로 전향하면서 동년배 친구들에 비해 늦었다는 생각을 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늦은 건 없는 거 같아요. 그림을 그리면서 잠시 쉰 기간도 있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제가 분명 얻은 게 있을 거고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상황과 고민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말도 조언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답을 찾으려하기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Soul through the dream(몽혼)(2017, 162.2*130.3 CM) / 백윤아
Milky Way(2016, 100*80 CM) / 백윤아

물고기를 놓아주다

백윤아 작가는 올해부터 물고기가 아닌 추상화를 그리고 있다. 올해 봄, 서울 서초구의 ‘이상아트스페이스’에서 ‘흐림’ 시리즈를 포함한 총 15점의 회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전시의 타이틀인 ‘흐름 FLOW’의 뜻대로 그날의 기분과 느낌에 따라 작업된 그림이었다.

각각의 작품에서 보이는 흐름도 유의미하지만, 작품들을 나란히 배치했을 때 보이는 큰 흐름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전의 ‘물고기’ 그림과는 다른 작업 형태와 느낌의 그림들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었다.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그린 물고기가 또 다른 족쇄가 되었어요. ‘물고기 작가’라는 호칭이 붙고 마치 저는 물고기만 그리는 작가처럼 인식되고 있었어요. 제 안에는 새롭고 다양한 것을 표현하고 싶은 열정이 가득한데요. 그래서 물고기를 이제 놓아보자고 결심했어요.”

사진 = 정종갑 사진기자

백 작가는 추상화 작업을 하며 전체적인 색의 비례 등을 많이 생각하지만, 최대한 감정과 본능에 따라 그리려 한다. 최근에는 캐주얼 풋웨어 브랜드 크록스(crocs)와의 아티스트 콜라보 작업에 참여하는 등 작품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처음 그림을 그릴 때부터 소망한 것인데, 감정의 전달과 소통이 잘되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 그림은 제가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질문과 같아요. 밥을 먹는 거처럼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에요. 행복을 찾아가는 게 인생인 거 같고 그림은 그 길을 찾는 도구에요.”

Imperfection_4(2018, 130.3*193.9 CM) / 백윤아
Imperfection_6(2018, 130.3*162.2 CM)
Imperfection_4(2018, 33.4*24.2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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