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고양시 서삼릉 미공개 태실군(胎室群)에 창덕궁 후원에서 옮겨온 ‘태실(胎室: 항아리에 태를 담아 묻은 곳)’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고 관심이 갔다. 어떤 이유로 지엄한 궁궐 후원에 태실이 있었을까?

태(胎)는 잉태한 어머니 몸과 아이 사이에 연결된 태반이나 탯줄 등의 조직을 일컫는다. 민가에서 아이들이 태어나면 태를 손 없는 날 짚과 왕겨를 쌓아 놓고 태운 후 강물에 버리거나 산에 가지고 가서 묻었다. 

조선왕실은 왕권의 안정과 나라 번영을 기원하고 태어난 아기씨 앞날의 건강과 장수, 복을 받는다고 믿어 전국의 명당을 찾아 태실을 만들었다.

빨간 끈으로 항아리 사면을 묶은 인종대왕 태항아리.

홍패, 전면:생년월일 생모 이름 명기/후면:담당내관과 의관이 서명. [사진=경북 성주군 세종대왕자태실 도예 전시자료]

아기씨가 태어나면 길한 날을 택하여 ‘태’를 물로 백번 정도 깨끗이 씻은 후 독한 술로 잘 갈무리한 후 안쪽항아리 바닥에 동전 한 닢 깔고 그 위에 태를 올려놓은 후 남색 비단으로 항아리를 덮었다. 그리고 바깥쪽의 항아리를 빨간 끈으로 동여매어 보관하였다가 명당자리에 묻은 것을 '태실' 또는 '태봉'이라고 한다. 

훗날 태실의 주인이 왕위에 오르면 왕의 위엄을 보이기 위하여 돌난간을 비롯한 석물을 더 많이 설치하고 “주상전하” 가봉비(加封碑)를 세우는 가봉 절차를 밟는다.

조선왕실의 태실 관리는 크게 두 번의 변화가 있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태실의 파괴 또는 손실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1928년 전국의 태실을 경성으로 옮겨온다. 그 후 1930년 일제 총독부와 이왕직에 의하여 지금의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기면서 예외 없이 창덕궁 후원 태실까지도 찾아내 이곳으로 옮겼다. 1999년 태 항아리들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 후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

미공개 서삼릉 태실군에는 전국에서 모아들인 역대 왕과 황제들, 왕실과 황실가족의 태실이 있다. 사진 속 태실 비문은 전면 “덕혜옹주 태실” 후면 “◎◎년 5월 자 창덕궁 비원 이장”이다. 후면 정과 같은 도구로 모두 남김없이 쪼아서 마멸된 연호 부분은 1930년으로 추측되는 “소화 5” 년이다. 지금의 ‘후원’을 비원으로 표기된 점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좌:덕혜옹주 태실비/우:창덕군 비원 이장 ◎◎년 5월

영·정조 임금과 같은 성군은 태실 조성에 따른 백성들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이를 경계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후원에 태실을 조성한 노력이 돋보인다. 영조실록에는 “장태를 할 때는 왕실 자녀들의 태는 하나의 산봉우리를 정하여 거기에 순서대로 묻으라 하였다”. 

1765년에는 세자와 원손의 태실을 제외하고 왕실 왕자녀의 태를 궁궐 안의 정결한 곳에 도자기 항아리에 담아 창덕궁 후원에 태실을 만들도록 하였다. 정조 7년에는 수교(=왕명)의 정식에 따라 태봉으로 응봉을 정하였고 17년에는 갓 난 숙선옹주(翁主)의 태(胎)를 주합루(宙合樓)의 북쪽 돌계단 아래에 묻게 하였다. 순조 때 승정원일기에는 후원에 태실을 조성한 기록이 보이고 옥류천 위쪽에서도 태실이 발견되었다.

1970년 후원 옥류천 위쪽 출토 태항아리. [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전시자료]

1929년 이왕직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창덕궁 태봉 도면에는 후원의 능허정 아래 정유 태봉에는 영친왕 임자 태봉에는 덕혜옹주(가운데) 갑인 태봉에는 고종 여덟째 왕자(오른쪽) 태실 위치를 표시하고 있다.

좌:창덕궁 후원 태봉도면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자료] / 우:이화문이 새겨져 있는 왕세자 '이구' 태항아리 [경북 성주군 태항아리 전시회 도예가 김영애]

경복궁 옆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018년 6월 27일부터 9월 2일까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조선왕실 아기씨의 탄생-나라의 복을 담은 태항아리”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특별히, 입구에 마련된 후원 태실만의 전시공간을 무료로 찾아 볼 수 있는 기회다.

경북 성주는 지역의 특산품인 참외와 함께 세종대왕자태실을 연계하여 문화재 보존 및 지킴, 지속적인 지역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때문에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고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 창덕궁 후원에는 태실에 대한 아무런 안내 표지판이 없다. 지금이라도 궁궐에서 우리의 태실 문화를 알릴 수 있도록 제고해 보면 어떨까 한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