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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지해수 칼럼] 굳어진 학구열을 녹이는 방법

지해수 칼럼 | 기사입력 2018/06/21 [09:31]

[공감신문 지해수 칼럼] 굳어진 학구열을 녹이는 방법

지해수 칼럼 | 입력 : 2018/06/21 [09:31]

[공감신문] 이 글을 읽고 있는 어느 세대의 분들이더라도 아마 전 세계 누구와 견주어도 더 많이 공부하셨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을 줄 아는 당신이 한국인인 확률이 높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 공부해왔다. 그러나 노력의 결과치고 조금은 기운이 빠진다고 느끼는 건 나뿐인 가.

 

사실 우리들은 진짜 공부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었으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활용할 줄을 모른다. 공부하는 방법도 제대로 모른다. 교과 과정의 공부만 해보았기 때문이다. 공부의 주제가 조금만 달라져도 학습법을 알지 못해 쩔쩔맨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학습 목표’에 주목할 줄 안다. 그것이 시험 문제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기에. 여기서 더욱 응용된 문제들이 출제되어 진짜 실력자를 가리게 된다. 공부에 대한 것에도 ‘목표’를 알고 가는 이들은 다르다. 내가 이 공부를 해야 할 목표가 있다면 하겠지만, 그것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하면 안 되니까- 다들 하니까- 이게 트렌드니까- 나만 뒤처지기 싫으니까-라는 생각으로 하면 그 쉬운 문제하나 맞추지 못할 거다. 그럼 그리 오랜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씨름했으면서, 언제쯤 자길 내다봐주려나 기다리는 철수 영희가 지쳐서- 결국 딴 애를 만나는 소식을 감내하면서도... 얻은 게 없다.

 

성인이 된 이후엔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한다. 전공이 과연, 전공일까. 내가 초등학교 때에 내 친구들은 지금보다도 더욱 순진무구했었다. 우린 무슨 과에 갈까, 벌써부터 고민했었다. 내 또래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은 웨딩피치, 세일러 문, 천사소녀 네티 같은 걸 보고 자랐었다. 우린 공주 만화 드레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인형 옷을 입히고 놀았다. 나는 의상 디자인과에 갈 거야! 몇몇이 말한다. 그러면 동생 돌보기를 좋아하고, 소꿉놀이를 좋아하던 애들은 옆에서, 나는 유아교육과!라고 말했다. 나와 함께 수영을 다니던 여동생은 매일 차에서 만화책을 읽었었는데, 나중에 애니메이션과에 가겠다고 했었다. 합기도를 잘해서 체대를 간 후 멋진 여자 경호원이 되겠다는 애들도 있었다. 그래, 그런 것들이 있었다.

 

일단 ‘하고 싶은 일’들은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하고 싶어 할 확률이 크다. 그래서 경쟁률이 굉장히 크고, 또 그 전공이 다른 곳에서 먹히지 않을 확률도 적지 않기에- 누군가는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연극영화과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수시 때 연극영화과의 경쟁률은 130:1? 정도다. 나의 동기들 중 과연 몇 명이나 아직 연기를 하고 있을까? 물론 나 역시도 연기자의 길을 걷는 건 아니지만. 글쎄, 난 성격상 이게 더 맞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서 나와 미술 등 다른 예체능 친구들을 제외하고- 다 무슨 과에 갔을까?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그 일을 좋아하려나?

 

어떤 일을 하려면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하는 지를. 그것이 공부가 된다. 어떠한 업무에 들어가서 파악하는 것도 공부다. 그러나 그것의 목표가 ‘봉급’일 때 진짜 공부일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 일이 썩 적성에 맞지 않아도 어때? 만일, ‘나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없는데?’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직업이 있지만, 그 중에서 확 끌리는 게 없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혹은 ‘난 이런 일을 해’라는 것보다 ‘난 이렇게 살아’라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사람일 수도.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일’이란 만족스러운 ‘돈’을 주는 수단이어야 한다. 본인의 심신을 최대한 괴롭히지 않는 선에서. 만일 그 봉급이 만족스러울 경우- 그 공부는 상당히 하고 싶은 진짜 공부! 아닐 경우엔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마지못해 하는 거다. 책상에 앉아 해답지를 보면서 아~ 이래서 답이 이거구나, 하는 꼴이다.

 

내가 아는 어떤 배우들은 연기를 잘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색적인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도 한다. 돈 때문이 아니라 체험을 위해서 하는 경우도 많다. 배우들은 배우는 것,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아니, 그런 걸 하는 사람들이다. 제대로 기다릴 줄 아는 배우들은, 작품이 없는 동안 초조해하거나 하지 않고, 나아가 무엇을 배운다. 사극을 위하여 승마를 배우고, 노래를 배우고, 기타를 배우고, 액션을 배우고, 한국 무용을 배운다. 준비된 배우가 되려고, 공부한다. 공부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다.

 

이건 주관적인 생각인데, 자기 스스로를 공부하는 배우도 멋진 것 같다. 자기 스스로를 알려는 시간을 가지는 것! 오래된 친구들을 계속 만나는 것도 나에 대한 공부다. 이건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말이다.

 

우린 무언가 스스로, ‘알고 싶어서’ 공부한 적이 정말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새로운 것을 마주했을 때, 학습법을 모른다. 이전에 알던 지식 정보도 까먹는다. 그것을 스스로 알고 싶어서 공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친구는 국문과를 나왔는데, 나보다 시를 몰랐다. 걔는 학점을 받기 위하여 공부했다고 했다. 나는 시가 좋아, 시의 꽁무닐 따라다녔었다.

 

나는 사실 별로 아는 것이 없는데, ‘누구들’은 나보고 똑똑하다고 한다. 사실 나는 ‘누구들’보다 모르는 게 많다. 그것들은 누구들이 대부분 할 줄 아는 것이다, 이를테면 운전 같은 것. 나는 운전을 해본 적이 아예 없다. 그럼 ‘넌 면허가 없어?’한다. 없다고 하면, ‘언제 따게?’한다. 마치 꼭 따야 되는 것처럼, ‘언제’라고 묻는다. 운전하고 싶지 않니? 안할 거니?- 묻지 않고 더 늦기 전에- 언제- 라는 듯.

 

그렇게 난 할 줄 모르는 게 많은데, 사람들이 잘 궁금해 하지 않는 것들은 좀 안다. 그런 것에 대해 나불나불하다 보면 똑똑하다고 한다. 그것들은 절대 까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싶어서 공부한 영역들이기 때문이다. 철학, 문학, 종교, 사회- 뭐 이런 것들 중에서도 비주류 적인 것들도 많다. 왜 이걸 보고 똑똑하다 할까?(사실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 남들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왜 잘 모를까? 그들이 이걸 접해보지 않아서다. 그건 왜 일까? 효율적이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난 어느 때보다 바빴었다. 2월 1일이 이사였기 때문. 2년 넘게 살던 집에 짐을 정리하려니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근데 그 와중에 이사 바로 전날, 주한 프랑스 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사유의 밤’ 토론회에 다녀왔다. 프랑스 철학자와 국내 학자들이 대한민국 사회를 주제로 토론하는 자리였다(개인적으로 토론의 질은 조금 아쉬웠다). 친구들은 나보고 거기에 왜 가느냐고 했다. 오늘 정말 추우니까 가지 말랬다. 근데 알고 싶어서 나갔다.

 

그런 곳에 다닌다고 학점을 잘 주지 않는다.(학생도 아니고, 잘 보일 교수도 없다.) 내가 평생 공부를 하든 말든 학력은 변하지 않는다. 그저 난 내가 공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걸 평생 써먹으니, 이미 학력만큼의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게 진짜 공부 아닐까.

 

재밌는 건 이런 진짜 공부를 하고자하는 마음 역시, 훈련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한국인 대부분은 이런 마음이 훈련되지 않았다. 이미 무언가를 원하기 전에, 해야 할 공부- 안 궁금한 것들이 주어졌기 때문. 한 마디로 ‘안물 안궁’인 남자애 여자애가 자꾸 ‘나 뭐한다, 난 뭐 좋아한다, 난 네가 이런 거 입었을 때 정말 이쁜 것 같다-’ 알려주는 꼴이다. 질려버리는 거다.

 

그런데 매력적인 어떤 애가, 궁금해지는 것들을 하나씩 알려주면? 정말 흥미진진하다. 진짜 공부를 하는 것으로 훈련된 사람들은, 매력적인 이성을 새로이 자꾸 볼 줄 알듯– 공부한다.

 

지금이라도 진짜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딱 하나다. 인생이 즐거워진다. 이전에 아빠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돈만 따진다만- 돈보다 중요한 게 많다. 그 대신 네가 만날 남자가 이거 세 가지는 꼭 가지구 있었으면 좋겠다. 건강, 친구, 그리고 취미.’ 아빠는 취미 없는 남자는 만나지 말라고 했다. (참고로 음주는 취미가 아니다)

 

나는 그 말에 정말 공감한다. 나도 취미가 많은데, 수영을 비롯해서 꾸준히 하는 두세 개의 취미 이 외에도 두세 달에 하나씩 새 걸로 갈아치운다. 새로운 걸 배워보고, 아 재밌다! 하고 끝낸다. 올해만 하더라도 폴댄스, 스페인어 등 다양했었다. 요즘은 자전거에 빠져가는 중이다. 새로운 공부를 거듭하면, 인생이 해피해진다. 그걸 연습하는 또 다른 방법도 있다. 내가 취미를 대하는 방식이 마치- 가벼운 연애술사 같지 않나.

 

가볍게 말고, 진정으로 사랑하면 된다. 사실 우리의 진짜 공부는 ‘사랑’에서 제대로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궁금해 하고, 알고자하는 그 마음! 호기심! 그 안에서 나를 찾는 응용력! 사랑이야말로, 공부의 끝판왕이다.

 

슬프게도 어린 나이부터 현실적인 것들을 너무 많이 고려하며 사랑하려는 이들이 있다. 너무 빨리, 인생의 즐거운 방법 하나를 스스로 지우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런 건 천천히 해도 될 텐데, 고통의 연속인 인생이 알아서- 해줄 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그런 일이 안 생길 지도 모르잖아. 삶의 모습이 다양하듯 행복이 어디에 있는 지도 무척이나 다양하더라.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다. 행복에도 왕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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