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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지해수 칼럼] 한 겨울들의 로켓 여름

지해수 칼럼 | 기사입력 2018/06/07 [09:22]

[공감신문 지해수 칼럼] 한 겨울들의 로켓 여름

지해수 칼럼 | 입력 : 2018/06/07 [09:22]

'로켓 여름', 따뜻한 사막의 공기 때문에 창문에 낀 성에의 모양이 변하고 예술작품이 지워졌다. 스키와 썰매는 갑자기 쓸모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레이 브래드버리 소설<화성 연대기>중에서

 


[공감신문] 나는 이태원동 경리단길에 산다. 스무 살에 자취를 시작하여 줄곧 강남에 있다가 2013년에 왔으니 햇수로 벌써 5년째다. 그 때 경리단길은 지금처럼 ‘주말스럽지’ 않았었다. 누가 어디사냐는 질문에 대답하면, 요즘은 ‘오, 핫한데 사시네요.’라는 반응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특히나 루프탑 플레이스(rooftop place)가 한창 떠오르던 작년 재작년엔 더욱 그랬었다.

 

<Fear of Dawn> by Katherine Bradford

그들은 내가 그런 분위기가 좋아 여기 사는 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냥 ‘아, 네’하지만- 사실, 산책을 좋아해서 자주 밖에 나간다. 이 산동네에서 보이는 전부가 루프탑이다. 굳이 경리단길 루프탑 바에서 청담동스러운 가격의 칵테일을 사 마실 필요가 없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 단골 가게에 간다.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주말-평일 개념이 없다. 느즈막히 일어나 편의점 도시락이나 사 먹으려고 나갔을 때, 동네에 사람이 많으면 주말임을 안다. 셀카봉을 든 20대 초반쯤 보이는 여자들이, 주민 같아 보이는 나에게 ‘저기요- 경리단길이 어디에요?’ 묻는다. 이게 다 경리단길입니다. 실망스러운 표정, 겨우 요고? 한다. 그렇지요- 가로수길, 명동, 강남역 같은 번화가가 아니라 여긴 사람사는 동네 성격도 무지 짙으니까요.

 

여느 대한민국의 ‘떠오르는 동네’답게 한순간 돌변하여, 동네 가게들이 모두 술집으로 바뀌고 쇼핑을 유발하는 그런 기이한 현상이- 이 동네엔 덜했다. 한 차례 그런 기류?가 있었을 때, 몇몇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비싸게 올려 떠난 업주들도 꽤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메인길에 건재한 오래된 약국, 철물점들, 세탁소, 마트, 슈퍼, 방앗간이 무지 자랑스럽다. 사실 그런 ‘곤조’를 유지하는 데에는- 동네를 떠나기 어려운, 또는 그런 한국적 도시계발의 특성을 이해못하는 우리 외국인 이웃들의 몫도 컸으리라!

 

난 동네 이웃들과 친하게 지낸다. 식당, 슈퍼, 세탁소 사장님들과도 인사하고 지낸다. 그 중에선 내 또래 사장들도 있어서 친구처럼 지낸다. 지나다가 얼굴보면 하나 둘씩 모여들어 한잔 마신다. 같은 아파트 사는 아빠들끼리, 단지 호프집에서 모이는 거랑 똑같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어디 뭐 오픈했데-‘한다. 지금도 이 동네, 그리고 길 건너 해방촌에 자꾸 뭐가 생겼다 없어졌다 한다. 재밌는 건, 늘 바뀌는 자리만 계속 바뀐다. 건물주의 악덕한 임대료를 감당하겠다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돈이면, 차라리 다른 곳에 가게를 낼 거 같다. 아예 번화한 동네- 혹은 다시 뜨는 압구정.

 

사람들은 ‘유행’이라 말하는 것들을 쫓으려 한다. 소비자의 심리에서 유혹적일 수 있다. 지금 내가 가진 돈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즐길 확률이 높아지니까. 특히 직장인처럼 한정된 여가 시간을 갖는다면 더욱. 그런데 반대로, 소비자가 아닌 제공하는 입장이라면 그건 어리석다. 경리단길에 ‘자주’ 바뀌는 자리 중- 서로 마주보는 두 곳이 있다. 한 마디로, 건너편. 얼마전엔 두 자리 모두 인형뽑기 가게가 들어왔었다. 인형뽑기가 다시 유행이 되었으니-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핫한 동네에, 지금 유행하는 인형뽑기 가게가 없으니 그걸 차린다? 그냥 ‘내가 이 동네 사는데, 인형뽑기 자주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었다면 괜찮다. 하지만 돈이 목적인 내 지인이었더라면, 아마 나는 말렸을 것이다.

 

흔히 ‘보세’라 불리는 옷들의 가격은 지금이나 내가 고등학교 때나 큰 차이가 없다. 신기한 일이다. 강산이 한번 바뀌지 않았나. 심지어 인상 폭이 좁은 택시 기본 요금도 2-3배가 올랐는데! 대신 옷값은 더 많이 든다. 작년에 도대체 뭘 입고 다녔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옷이 없는 느낌이다. 왜? 유행이 너무 빨라서.

 

KBS미니시리즈 <미안하다 사랑한다> 중에서

그래도 예전에는 드라마에서 한 여자 배우의 룩이 유행하면, 한 계절을 도맡았었다. 중학교 때 드라마<미안하다 사랑한다> 열풍으로 많은 여자들이 어그부츠를 신고- 모 브랜드의 컬러풀한 니트 원피스-혹은 그 비슷한 것들을 입었었다. 

 

내가 20대 초반이었던 10년 전- 압구정 밤거리는 ‘트루 릴리젼’청바지의 굵은 스티치들이 수놓고 있었다. 그런 프리미엄 진은 20만원에서 더 비싼 브랜드는 60만원 이상-까지 다양했다. 나처럼 키작은 애들은 기장을 수선해야 했는데, 그걸 또 잘하는 데에서 하려면 몇 만원이 들었다. 그래도 한번 사면 2년은 입었으니, 멋내고 싶은 20대 초반들도 기꺼이 용돈을 모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멋내는 데 몇 백만원쯤 써도 큰 부담 없는 사람들은, 유행을 많이 타는 명품들도 그냥 산다. 그게 아닌 나 같은 사람들은 저렴한 보세의 옷을 자주 쇼핑한다. 유행이 무지 빠르게 바뀌기 때문이다. 이전에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겨우 TV앞이었다면, 지금 우리는 실시간으로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다. SNS가 거기에 큰 몫을 한다.

 

그러니 제공하는 사람 입장에서 지금 유행하는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건 이미 늦은 ‘것’이 된다. 준비하여 내놓는 순간- 또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넘어가 있거나 그럴 준비중일 거다.

 

우리는 어디서든 재빠른 인터넷을 사용한다. 이것이 당연해지기 전, 사람들은 ‘광속 인터넷’이란 말을 썼었다. 빛의 속도만큼 빠르다는 거다. 빛은 1초에 300,000km의 속도로 간다. 달에서 빛을 쏘면 지구에 약 1.3초만에 도달한다. 무더운 이 여름의 햇빛은 언제 쏘아진 걸까? 해와 지구의 거리는 약 150,000,000km- 즉, 우리가 지금 쐬고 있는 이 기센 햇빛은 약 8분 전에 쏘아진 것이다.

 

사람은 8분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한다. 아니, 8초 동안에도 그렇다. 명상을 자주 해본 독자라면 공감하실 거다. 겨우 한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잠깐 동안에도, 우리 뇌는 수많은 이미지와 소리, 냄새들을 떠올린다. 쉬질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너무 많은 정보환경에 노출되어 있지 않나.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뚜껑을 닫고, ‘이제 그만-‘이라 하지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입을 벌리고 있다. 그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여 만족스러운 무언가를 제공해보겠다고? 그러려면 ‘지금’인 것에 뛰어들면 안된다. ‘지금’들을 데이터 삼아, 앞을 파악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건- 통계라는 거다.

 

인류가 역사를 공부했던 이유도 이것이다. 어떻게- 왜- 그랬는지 파악할 수 있다. 어떠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들을 ‘정확하고 편견 없는’ 관점에서 분석하여 읽어낼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하나 더, 현대에 맞게 그 변화하는 속도가 얼만큼 빠른 지도 파악해야 한다.

 

<화성 연대기>라는 소설의 첫 구절은 이러하다 ‘1분 전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오하이오 주의 겨울이었다.’라고. 근데 어느 순간 도시에 ‘로켓 여름’이 불어 닥쳐, 따사로운 기운이 파도처럼 휩쓴 것이다! 1분 만에, 스키와 썰매가 쓸모 없어진 거다. ‘로켓이 기후를 만들어냈고, 짧은 한순간 여름이 땅을 뒤덮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 흐름에서, 환절기란 매우 미세한 순간이다. 마치, 로켓이 오하이오 주의 도착하기 전의 찰나-랄까.

 

Artwork by Katherine Bradford

재화든 서비스든 컨텐츠든 뭐든, 제공하는 사람 입장에서 장기적인 무언가를 판다면- 지속력이 긴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처음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데이터를 가지고 파악하는 것에 더 많은 힘을 쓰는 게 좋다.

 

다행(?)인 것은, 인간이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살면서도- 뇌(의식)는 그러한 흐름에 따르되, 신체는 그렇지 않다는 거다. 그러니 저출산 시대에도 여자들은 몇 십년 동안 임신이 가능하며, 사냥감을 먹던 유전자 때문에 고기 굽는 냄새에 침이 고이고, 남자들은 생식 때문에 성관계를 맺지 않으면서도 임신이 유리해 보이는 여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 너무 많이 먹어 병에 걸리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먹을 것이 없던 때처럼 튀기거나 당분이 높은 고열량 식품을 선호한다.

 

산모가 태아의 지능 발달에 좋은 태교를 하고, 좋은 것을 먹더라도- 여전히 인간의 새끼들은 스스로 엄마 젖을 빨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는 아기를 보면 여전히 우쭈쭈- 하게 된다. 한마디로 식당은 기본적으로 음식이 맛있어야 하며,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려면 어느 정도의 귀염성이 존재해야 한다- 이 말이다.

 

‘뭐 해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1-20대가 아닌, 모든 세대들의 공통점으로 늘어난 지금. 만일 제공 혹은 제안하는 입장이 되어 누군가의 지갑 혹은 마음을 열게 하려면, 우린 오늘날의 시간의 흐름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난 나만의 고유성을 지키겠어’라면 별 상관이 없지만 말이다. 사실 그런 고유성이 매력적인 사람들이 제일 럭키할 거다. 이런 이들을 직업의 카테고리를 떠나 그냥 ‘아티스트’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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