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셀하, 나는 그 돌고래를 셀하라고 불렀다. 원래 ‘셀하’는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멕시코 자연 워터파크이다. 그러니까 나는 셀하에서 셀하를 만났다. 처음엔 그토록 셀하에 가고 싶어 하던 S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돈을 내고 반나절 짜리 워터파크에 간다니. 나는 수영을 못했고, S는 수영을 잘했다. 나는 물을 보는 걸 좋아했고, S는 물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여긴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멕시코다. 나는 곧 설득 당했고, S와 멕시코에서 만난 여행자 H와 함께 투어를 신청했다.

아침 일곱 시 반, 쁠라야 델 까르멘에서 투어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가니 어느새 셀하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나도 모르게 연신 하품이 나왔다. 보증금을 내고 오리발과 스노쿨링을 빌렸는데, 신기하게도 (시큰둥했던 게 무색할 만큼) 벌써부터 신나는 게 아닌가. 구명조끼를 입으니 자신감이 생겨서 얼른 들어가고 싶다며 설레발을 치기도 했다. 안내판을 보니, 셀하는 실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워터파크라곤 한 군데 가본 것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사람만 북적거리고 파도 풀에서 둥둥 떠다녔던 기억뿐이었다.

뷔페에서 주린 배를 단단히 채우고, 입구 바로 앞에 있는 물에서 스노쿨링을 하기로 했다. 아아, 여기가 셀하구나. 탁 트인 시야엔 천혜의 자연이 펼쳐져 있었다. 문득 워터파크가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내가 머쓱해졌다. 1500년 전의 마야 왕족과 귀족들이 휴양을 즐기던 곳이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잠수에 대한 공포가 심한 나는 스노쿨링 장비와 구명조끼에 의지하며 용기 내어 물속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반사적으로 눈을 꼭 감았었는데 S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나도 안다, 눈 떠도 되고 숨 쉬어도 된다는걸. 참고 있던 숨을 후하고 내쉬며 눈을 떴다. 내 앞으로 한 무리의 작은 물고기 떼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물이 너무 맑아서 수면 아래의 세상이 선명하게 보였다. 자신감이 붙은 나는 고개를 다시 내밀지도 않고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재빠른 그들의 몸놀림이 놀라웠다.

스노쿨링을 마치고 셀하를 둘러싸고 있는 수풀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셀하엔 많은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데, 짚라인이나 튜브나 다이빙이나 마야 동굴 탐험- 모두를 무료로 즐길 수 있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건 ‘돌고래와의 수영’이었다. 이 액티비티는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깨나 가격이 높았던 까닭에 우리는 멀리서나마 사람들과 춤을 추는 돌고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무다리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서 손에 손을 잡은 사람들이 강강술래를 하듯 빙글빙글 돌았다. 돌고래는 그 원안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거나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렀고, 방긋방긋 웃으며 사람들이 주는 작은 물고기를 받아먹었다. 그런데 다리 한편에 한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돌고래를 찾습니다.’

큼지막한 글씨 위엔 흐릿하게 프린트된 돌고래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나는 S와 H를 부르며 아무래도 돌고래가 실종된 것 같다고 말했다. S는 돌고래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 가출을 한 건 아닐까 하고 대수롭지 않아 했고, 사진을 자세히 보던 H는 이렇게 프린트 해서야 돌고래를 어떻게 찾냐며 어디가 몸이고 어디가 물인지 분간이 안 된다고 혀를 찼다.

“그럼 지금 헤엄치고 있는 돌고래의 친구인 걸까?” 내가 물었다. 가출했을 거라고 추측했던 S는 이제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아무 상관없게 되었다고 냉소적으로 말했고, 사진에 불평하던 H는 어쩌면 추방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추측을 꺼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지금 사라진 돌고래는 누군가 자기를 찾아주었으면 하고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데에 미쳤다.

나의 생각을 S와 H에게 말했다. S는 가출을 한 거라면 다시 찾는 것만큼 못할 짓은 없다고 손사래를 쳤고, H는 추방을 당한 거라면 다시 찾는 것만큼 민망한 짓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 돌고래가 사라진 건지, 납치된 건지, 가출한 건지, 추방 당한 건지, 어딘가에 숨어버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우리 앞에선 다른 돌고래가 여전히 바삐 헤엄치고 있었다.

우리는 돌고래에 대한 토론은 그만두고, 짚라인을 타러 갔다. 무료 액티비티이니 몇 번이고 반복해서 짚라인을 탔다. 아래엔 깊은 셀하의 물이 철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라인을 가로질렀다. 돌고래는 더는 상관없게 되었다. 짚라인에 이어서 튜브를 타고 다이빙까지 하고 나니, 우리는 몸을 움직이고픈 의욕을 상실하고 레스토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어차피 다시 돌아가는 버스는 오후 늦게나 있으니, 우리는 해먹에서 낮잠을 자기로 했다.

그러나 많은 모기들, 자기들끼리 싸우는 너구리들의 방해로 깊은 잠을 자지 못한 채 다시 일어서야 했다. 미처 걷지 못한 곳을 걸어볼까 하고 모두 함께 수풀 길을 걸었다. 그러다 발견한 세노테(천연샘). 아쉽게도 수영은 하지 못했고, 그냥 슬쩍 지나치려는데 H가 갑자기 우리를 불러 세웠다. H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엔 무언가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세노테의 한구석에서 돌고래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손을 흔들었다. 돌고래가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슬그머니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돌고래의 언어를 몰랐고, 돌고래는 우리의 언어를 몰랐기에, 서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H는 사진이 엉망이긴 했지만 그들이 찾는 돌고래가 이 돌고래인 것 같다고 말하더니 갑자기 손과 발을 움직이며 끽끽거리기 시작했다. 나와 S는 그런 H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H는 사뭇 진지한 얼굴이었다.   

“이건 돌고래의 소통 방식이야.” H가 말했다. 돌고래는 초음파로 의사소통하지 않냐고 물어보려던 나는 이내 그만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고래가 손뼉을 치며 물속을 이리저리 헤엄치는 게 아닌가. H는 ‘역시 그렇군’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쟤가 뭐라는데?” 나와 S는 H 쪽으로 몸을 당기며 물었다. “숨어있대. 누군가 자신을 찾아줄 때까지”.

그럼 우리가 가장 먼저 돌고래를 찾은 건지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H가 ‘그런데 우리가 가장 먼저 발견했대’라고 말을 덧붙였다. 이상했다. 실종된 지 꽤 된 것 같았는데,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다니? 돌고래는 계속해서 비언어적으로 우리에게 말을 했다. H는 성실하게 돌고래의 사연을 번역해주었는데, 사연은 이러했다.

돌고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과 헤엄을 치며 물고기를 받아먹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봤던 돌고래들처럼. 그러던 어느 날 돌고래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람들 사이를 헤엄치고, 꼬리를 지탱하여 물 위에 서있고, 애교를 부리고, 손뼉을 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돌고래인 건지, 자신이 돌고래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건지에 대해 고민하던 돌고래는 가출을 결심했다. 돌고래라면, 자신이 돌고래라면, 다른 이들이 찾지 않을까 하고.

나는 사람들과 강강술래를 하던 돌고래를 떠올렸다. 그 돌고래는 친구의 실종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나는 굳이 이 말을 하지 않았다. S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면 언제까지 가출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돌고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물속으로 푹 가라앉아 버렸다. H는 S의 등짝을 때렸고, S는 그저 머리를 긁적거렸다. 돌고래가 다시 떠오르지 않았기에 우리는 버스를 타러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에게 알려야할까. 그러나 우린 돌고래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무게감 있는 뭉게구름이 피어올랐고, 그 너머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셀하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너며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셀하의 물 한가운데에서 무언가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었다. 돌고래. 그는 가만히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새하얀 달이 점점 선명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가족을 그리워하는 걸까.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느낄까. 나는 풀리지 않은 ‘돌고래 실종(가출) 사건’의 미스터리에 대해 골몰하다,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셀하’.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곳처럼 경계의 불분명함. 불확실성으로부터 기인하는 불안. 돌고래는 자신을 돌고래가 아닌 다른 무엇이라고 여기는 걸까. 돌고래는 여전히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곧, 셀하의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나는 돌고래가 없는 빈 곳을 향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주인에게 닿지 못한 이름들이 하늘 위로 흩어졌다.

[작가의 여행기에 상상력을 덧붙인 것임을 밝힙니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