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거긴 배낭여행자들의 깐꾼이죠.”

쁠라야 델 까르멘을 처음 알게 된 건 어느 여행자의 입을 통해서였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깐꾼의 해변은 호텔들이 섭렵했고, 호스텔은 센뜨로에 있어서 바다에 나가려면 버스를 타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에 비해 쁠라야 델 까르멘은 카리브 해를 바로 앞에서 즐길 수 있기에 배낭여행자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당연히, 고민할 것도 없이, 쁠라야 델 까르멘으로 향했다.

평소에 해수욕을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처음엔 ‘바다가 다 똑같은 바다 아니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바다를 자주 찾지 않았고, 호주 멜버른에서 지내면서도 그 맑고 깨끗한 바다를 손에 꼽게 보았다. 어쩐지 바다보다는, 공포와 평화가 함께 공존하는 숲이 더 매력적이었다.

호스텔에 짐을 푼 뒤 혹시 몰라 수영복을 안에 입고서, 해변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호스텔과 해변의 거리는 상당히 가까웠다. 키 큰 야자수들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점점 가까워졌다. 어라? 바다가 다 똑같은 바다 아니었나? 내 시야에 바다가 꽉 들어찬 순간,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실재하는 바다인지 의심스러웠다. ‘에메랄드빛 바다’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봤지만, 내가 직접 말해본 적은 없었다. 나는 여태까지 에메랄드빛을 띠는 바다를 본 적이 없었고, 내가 본 바다의 색은 더러운 푸른색과 깨끗한 푸른색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나에게 바다는 푸르기만 했다. 드디어 나의 바다에 새로운 색깔이 들어온 것이다.

에메랄드는 고대 로마에서 사랑과 미의 여신인 비너스를 상징하는 색이었다. 그러나 중세에 전해지는 민간전승에 따르면, 에메랄드를 혀 위에 올려두면 악마를 부르거나 악마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악마에게 비너스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것일까. 쁠라야 델 까르멘은 생(生)과 사(死)가 공존하는 색으로 가득했다.

아니, 모든 바다는 언제나 양면적이다.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비너스 같다가도, 한순간에 나의 육체와 정신을 집어삼켜버릴 것만 같은 악마의 모습이다. 해변에서 지긋이 바라보는 바다는 생명력이 넘치지만 저 깊은 심해에선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나와 S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에 들어갔다. 차가운 바다의 온도에 찌르르 몸이 떨려왔다. 몸을 푹 담그고 한동안 있으니 금세 적응이 되어 몸이 따뜻해졌다. 우리는 비치볼도, 튜브도 없었기에 수영밖에 할 일이 없었다. 중요한 건, 나는 수영을 못한다. S는 벌써 저만치 수영하러 가버렸다. 투명한 바닷물 아래에선 나의 몸뚱이가 해체된 모양새로 물결치고 있었다. 둥둥 하릴없이 떠있으려니 살짝 지루했다. 수영을 시도해봤지만 계속해서 짠 바닷물이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한참을 캑캑대고서야, 그만두었다.

나는 목만 빼꼼 내민 채로 해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야자수와 파라솔 밑에 썬 베드들이 줄지어 놓여있고, 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로 들어온 사람들은 맥주를 손에 들고 여유를 즐기고 있다. 해변엔 모래 장난을 하는 아이들과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듯 연신 사진을 찍는 부모, 매트를 깔고 그 위에서 선탠을 하는 사람들, 물에 들어가진 못하고 멀뚱히 감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득 바다의 시선은 이런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품에서 이렇듯 사랑스럽게 놀다 가기만 한다면 나는 이들을 끝까지 품어주리라.

찬찬히 둘러보던 나의 시선이 해변 끝에 다다랐다. 이 해변을 따라 쭉 올라가면 깐꾼에 다다를 것이다. 그곳엔 사람들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신혼부부들이, 휴가를 즐기러 온 부유한 사람들이, 또는 이왕 온 거 제대로 즐겨보자는 배낭여행자들이 있을 것이다. 처음 우리의 계획대로였다면 깐꾼 호텔에서 올인클루시브를 즐기고 있었을 테다. 그러나 우리의 예산으론 터무니없었다.

솔직히, 쁠라야 델 까르멘은 돈이 없어 깐꾼 대신 온 거였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바다의 품에 안겨있으니 ‘깐꾼 대신’이라는 생각이 싹 가셨다. 돈 있는 자들을 위한, 가난한 자들을 위한 해변은 없다. 생각해보면, 우린 모두 같은 바다의 품에 안겨있는 거나 다름없다.

나는 품 한편에서 자유형을 하고 있는 S를 보았다. 햇빛을 받은 물보라가 반짝이며 별처럼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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