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뉴에이지 음악을 듣다가 길가에 핀 해바라기가 눈에 들어온다. 해바라기는 해만 바라본다. 낮이든 밤이든 해만 바라본다. 비가 오던 눈이 오던 해만 사랑한다. 오로지 해만 바라보며 살아간다. 해바라기의 꽃말은 숭배, 의지 기다림이다. 해바라기를 생각하다가 오래전에 본 영화, 해바라기를 다시 돌려 보았다. 

이럴까, 저럴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준다. 심장을 찌르던 대사가 방안에 떠돈다. "사랑이 별건가, 행복했던 시간 짧은 기억하나면 충분한 거지. 기억하고 있다면 사랑은 변하지 않아." 

이 대사를 내 식으로 다시 풀어보면 이렇게 된다. "인생이 별건가, 살다 보면 별일이 생기는 거지. 행복했던 시간, 짧은 기억하나면 충분한 거지. 기억하고 있다면 나름대로 멋진 인생을 산 거지." 어쨌든 열심히 살지 않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비겁한 변명 따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 '넌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살아온 생이 싸늘하지 않고, 생이 따뜻하다고 울컥하도록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잘 계획해서 잘 살 수 있도록 나를 채찍하고 위로하고 응원하며 아낌없이 칭찬해야 한다.

사진=Pixabay

해바라기에 대한 말(해바라기는 해만 바라보며 산다)은 오래전 연애편지를 쓸 때에도 참 많이 사용했다. 청춘을 떠나보낸 지금에서야 곱씹어 보니 간절한 열망에 대한 방법을 알려주는 듯하다.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하나의 목적어, 내 집(희망)을 짓는데 모든 것을 걸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해바라기처럼 하나를 향해 나아가라고. 그렇다. 무엇이든 한눈팔지 않고 나의 집(희망)을 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을 만나게 된다. 그 길이 지름길이 될 수도, 돌아서 가야 하는 길이 될 수 있지만. 내 집(희망)을 반드시 짓게 된다.

다만 가는 과정에 새로운 좋은 길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한 길로 쭉 가야 한다. 다시 말해 희망이라는 x축과 열정이라는 y축이 정확히 하나로 포개질 때 내가 지은 집(희망)은 어슴푸레하게 보이게 된다. 내 집(희망)이 반듯하게 지어진 것이 정확히 보일 때까지 중심을 잡고 가야 한다. 한눈팔거나 호기심으로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늪에 빠져 치명적이게 된다.

누구에게나 내 집(희망)은 존재한다. 다만 포기하지 않고 가는 사람, 포기하는 사람에 따라 내 집(희망)이 되거나 남의 집(희망)에 얹혀살게 된다. 내 집에서 편안히 정착하며 즐겁게 살거나 아니면 남의 집에서 눈치 보며 이리저리 흔들리며 부유하게 된다. 또 내 집(희망)이라 해도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일찍 도착하거나 늦게 도착하게 된다. 아무리 예쁜 신발도 내 발에 맞지 않으면 내가 주인이 될 수 없듯 내 집(희망)을 향해 올인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집(희망)이 아무리 좋아 보여 기웃거려도 내 집(희망)이 될 수 없다. 늘 다른 사람의 집(희망)에 유혹되지 않게 경계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고 내 집(희망)을 향한 불굴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어떤 집을 짓든 단단함이 영혼과 육체에 쇠사슬로 고정되어 있어야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다. 

또 나에 대한 믿음과 칭찬 따뜻한 응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평생을 내 집(희망)을 바라보며 나아간다는 것은 고행이다. 그러니 사명이 바탕이 된 나에 대한 철저한 약속이 없으면 부질없다. 다시 말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행복할 때나 행복하지 않을 때나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마음이 가득해야 한다. 그래야 용기가 생기고 한걸음 두 걸음 옮기는 발길이 가볍다.

내 집(희망)을 짓는 데 있어 자주 안부를 물으며 마음의 대답도 들으며 가야 지루하지 않다. 짓고 싶은 간절함이 범람해야 용기는 물처럼 고이고 고인 용기는 강을 이룬다. 강이 된 용기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때의 두려움을 밀어내게 된다. 두려움이 밀려나면 그동안에 나를 괴롭혔던 고통의 페이지도 넘어간다. 그리고 다시 하얀 빈 백지를 만나게 된다. 무언가를 새로 채울 수 있는 여백, 오전에 비 오고 오후에 다시 해 뜨듯. 다시 집(희망)을 지을 용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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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때로는 초조하게 기다렸던 날이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되고, 잔뜩 기대를 갖는 희망이 대수롭지 않은 오늘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기다리면 해는 다시 뜨니까. 해볼 만하다.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 시작하는 시간 동안 겸손함을 배우고 착하게 길들여진다. 그것이 바로 시간의 힘이다. 포기하지 않고 안갯속 같은 내 집(희망)을 짓는 과정에 익숙해야 한다. 열심히 짓다 보면 아름다운 내 집(희망)은 지어진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나팔꽃도 있고 100년을 기다렸다가 꽃을 피우는 용설란도 있다. 4월에 피는 목련도 있지만 12월에 피는 동백꽃도 있다. 다만 내게 찾아온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위한 사랑과 응원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간수가 들어가야 단단해지는 두부처럼 나를 믿고 사랑하지 않으면 내 집(희망)은 멀어진다. 

수시로 나에게 힘을 주는 말을 자주 해야 한다. '사랑해', '괜찮아', '잘 했어', '하기 싫으면 잠시 쉬어' 란 말을 자주 해야 한다. 고통을 잊게 해 주는 응원의 말, 등을 토닥여주는 위로의 말, 아픔을 잊게 해주는 칭찬의 말은 힘이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은 나 자신이니까.

그리스 시인 소포 클래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지쳐 포기하고 싶을 때에는 이 말을 반드시 기억하자. 이 문구를 대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누군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오늘을 참 가볍게 여기며 살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게 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적절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내 걸음으로 가자. 뚜벅뚜벅 가자. 지치면 쉬어가자. 하루가 쌓여 1년이 되고, 그 1년이 쌓여 10년이 되고 그 10년이 모여 내 인생이 되듯이, 이 세상 떠나는 날, 스스로에게 '잘 살아왔다'란 말은 남길 수 있도록 1초도 헛되이 보내지 말자. 소중하게 여기자. 내 집(희망)을 짓는 그날까지.

씨앗이 온전한 나무가 되어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려 꽃이 피기까지 최상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물과 햇빛 그리고 정성이 요구된다. 옛말에 '행운은 준비된 사람을 좋아한다/Luck favors the prepared.'는 말이 있다. 산다는 것, 내 집(희망)을 짓는 것이 때로는 섬처럼 외롭거나 은하처럼 고독해도 짓고 나면 최고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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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내 발자국이 아무리 부끄러워도 돌이킬 수 없다. 앞으로 부끄러운 발자국이 되지 않게 정확하게 체크하며 가면 된다. 내 집(희망)을 짓는 것이 낯설고 어두운 터널 속의 완행열차처럼 더디더라도 내 페이스로 지어야 한다.

시작이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끝은 있다. 또 빠른 것이 항상 좋을 수는 없다. 짓고 나서 비가 새거나 금이 가서 아니면 한쪽으로 기울어져 살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정확하게 반듯하게 남의 시선 생각하지 말고 내 집(희망)을 지어야 한다.

힘이 넘칠 때는 빨리, 힘이 부족할 때는 느리게 지어가야 싫증 나지 않는다. 어둠이 깊고 길수록 빛이 그립듯이 세기말 회색빛 터널을 꿋꿋이 지나 예쁜 내 집(희망)의 꽃등을 두 손으로 환히 밝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가자. 내 집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해바라기처럼 해를 보며 가자! 멈추면 비로소 그림자까지 아름다운 내 집(희망)을 기대하며 상쾌하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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