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지해수 칼럼니스트=요즘 정말 재밌게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태조 왕건>! 드라마도 뉴트로 열풍인건가, 이건 ‘명작 드라마’인걸 떠나서 대사나 캐릭터들도 너무 재밌는 거다. 아마 나와 유머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라면 한 회에 몇 번씩은 소리 내어 웃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된 건 실은, 이런 이유였다. 당시 이 드라마가 방영될 때엔 안 웃겼던 것 같은데, 지금에 와 보니, 뜻밖의 흥미요소가 생긴 거다. 이를테면 극 중 견훤은 말을 두 번씩 한다. ‘삼국의 통일은 우리 백제가 해야 해, 백제가 해야 해!’ ‘왕건이 나의 아우가 되었단 말이지, 아우가 되었던 말이지! 이 견훤의 아우가!’

고려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 중에서

요즘 내가 보고 있는 부분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백제와 세력을 다투는 시기다. 천년의 영광을 누리던 신라는 세력이 나약해졌고, 고려와 친하게 지내며 엄밀히 말하자면 의지하는 입장이다. 

아직 다 본 건 아니지만 몇 가지 기억의 남는 장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하나 좀 쇼킹했던 건... 고려의 오씨 부인(염정아 분)이 왕후(장화왕후)에 오르는 책봉식 연회 장면이었다. 그날 왕건(최수종 분)과 장화왕후가 앉아있고, 신하들이 무희들의 춤을 보고 관람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뒷풀이’인 셈이다. 

무희들의 공연이 끝나고, 신하들은 왕후의 자리가 채워지니 마음이 안정이 되고, 또 고려가 이 삼국 통일의 꿈을 이룰 것 같다며 즐거워한다. 너무 감격해서 일까? 갑자기 한 신하가 벌떡 일어나더니, ‘폐하, 소인들이 너무 기뻐서 그러는데 폐하께 춤을 춰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선 왕건이 ‘아니, 이 사람 자네 왜 그러는가?’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들 일어나시오!’하더니- 신하들이 황제 앞에서 시키지도 않은 춤을 추더라는 것!

아니..... 진짜 멋있잖아?
‘유교’ 국가인 조선을 거친 지금의 우리들도 ‘상사’ 앞에서 함부로 못하는 행동들을, ‘고려’인들은 했더라는 거다. 그래, 춤을 추고 싶으면 추는 거지 누구 허락을 왜 받나! 하긴 삼국시대/후삼국 시대의 문화에 대해 공부하다보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축제’. 팔관회, 연등회  등 불교 행사가 많았던 당시의 축제들은 사실, ‘연애의 장’이기도 했다고 한다. 

대한뉴스 제 315호-몰지각한 댄스광 처벌 / 중에서

어릴 때 나는 조선시대 왕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즐겨보았었고, <태조 왕건>은 그다지 재밌어하지 않았었다. 여자 아이에게 허구헌날 전쟁, 전투, 군사 이야기만 하는 드라마가 뭐 그리 흥미로웠겠는가. 근데 지금은 아니다. 이 한반도에도, 저런 인물들이 있었다는 게, 오히려 놀랍고 진짜 멋지다고 생각한다. 왕들은 항상 전투복 차림이다. 그들의 워크웨어다. 정복이 그들의 업무였던 것이다. 후삼국의 왕들은 야망과 욕심이 있었고, 그들의 신하들 역시도 그러한 꿈을 뒷받침하였으며 포부가 컸다.

왕건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던 듯하다. 일단 그는 불교 외에 다른 종교 역시 포용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합중국’인 미국이 이민자들의 다양한 종교나 문화를 인정했듯이 고려도 그러했다. 성적으로도 그들은 매우 평등했다. 송나라 사신이 ‘고려인은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진다’고 기록할 정도로 연애가 자유로웠으며, 당연히 여성의 이혼과 재혼도 가능했었다. 

고려 가요인 쌍화점에서는 ‘회회 아비가 손목을 잡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회회 아비란 추측컨대 이슬람 상인. 지금 이 나라가 ‘KOREA’로 불리게 된 것이 ‘고려’의 영향일 정도로, 당시 고려의 대외 무역은 활발했다. 이슬람 상인들과 연애한 여자들도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고려의 ‘연등회’를 그린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 전체

아직도 외국 남자와 만나면 눈을 흘기는 어른들이나 자신, 혹은 다수와 조금 다르다고 깔보는 건- ‘고려의 후예’스럽지 못한, KOREA스러운 행동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상한 체면치레와 변질된 유교 사상, 이상하게 접목된 전체주의가 서로를 너무 아프게 하는 것 같다. 

‘양반닙네’들은 자꾸 어디가면 ‘유교유교’한다. 그런데 사실 한국의 유교는 ‘공자님’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도 아니요, 조선 스타일대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아무 것에나 ‘유교사상’을 가져다 붙이기도 한다. 유교의 기본도 모르면서! 심지어 제자백가 중 묵가를 대표했던 학자인 묵자는, 유교에서 예악과 의례를 중시하는 성격을 비판했다. 그는 ‘겸애설’을 내세우며 아무 조건 없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한다고 가르쳤다. 

‘유교’는 하나님이나 알라 신을 믿는 유일신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다. 당연히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며 계속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꼰대’들의 철학처럼 귀가 닫혀있는- 꽁꽁 얼어붙어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이를테면 난 묵자가 ‘예악’중 ‘악’까지 부정한 건- 조금 비판, 아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는 음악을 인생의 낭비라고 여겼다. 절약을 중시했던 묵자는, 음악을 즐기는 것은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물자와 시간을 낭비하는 사치활동으로 생각했다. 물론 모두가 잘 먹고 잘 살았던 때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리더’들에겐 더욱 이러한 점들을 강조했다. 근데 역사적으로 모두가 잘 먹고 잘 살았던 적이 에덴동산 외에 과연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인가(...)

나에게 전생이 있었다면, 그게 한반도였다면 고려에서의 삶이었길 바란다. 타임머신이 개발되어 과거로 여행할 수 있다면 난 고려로 가서 축제를 즐겨보고 싶다. 지금보다 훨씬 다양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였을 것 같다. 고려가 조선보다, 아니 우리보다 훨씬 세계적이고 앞선 마인드를 가졌었더라는 것.

왕건은 수도를 ‘개경’으로 삼았다. ‘개’, ‘연다’는 뜻이다. 활짝 문을 연 왕건은, 북방 정책을 펼치며 발해가 빛났던 저 북쪽의 영토까지 확장할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외세에 침략당하며 수호하기 바빴던 조선과 매우 다르지 아니한가. 

KBS<태조왕건>중에서

조선에서 물론 훌륭한 왕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세종대왕- 아, 그 분이 안 계셨더라면 과연 내가 작가를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배우고 계승해야할 사람들에, 삼국의 왕들과 고려가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나 잊는 동안, 누군가는 빼앗아 가고 있었으니까.

‘동북공정’에 대해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중국은 주변의 작은 국가들이 실은 모두 중국의 뿌리에서 출발한 거라 주장한다. 여기, 우리의 고구려와 발해도 포함된다.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던 나라다. 그 말대로라면 고려 역시, 중국에 뿌리를 둔 나라가 된다. 그랬던 나라 위에 중국의 유교 영향을 받은 조선이 세워지고, 지금의 KOREA가 된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말인가.

삼국시대와 신라, 후삼국과 고려, 아니 그 이전의 고조선... 모두 우리의 역사다. 나는 우리의 황제들을 지키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도 함께 말해주길 바란다, 그는 우리의 폐하였다고 말이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