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지해수 칼럼니스트=솔직히 최근,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주변에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조금 애매한 게, 나에게 어떤 큰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요즘 좀 피곤하다며 이런 저런 자릴 회피해 다닐 뿐이었다. 왜 힘들었냐고? 정확히 말하자면, 배신감이 들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웠다.

필자 작품, 콜라주

최근 몇 달 사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들-에 정말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아마 그 뉴스를 통해 강남의 클럽 문화를 처음 접한 분들은 더욱 그랬으리라 생각이 든다. 나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강남 쪽 클럽은 잘 안가고 집 가까운 이태원으로 가기 시작했지만, 어릴 때는 꽤 많이 갔었고 여전히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래서 더욱 깜짝 놀란 것이다. 그냥 아예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 그대로 나랑 아예 상관없는 사람들-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이라던지 우리 지역 아닌 타 지역의 행정 의원- 이기적이지만... 그런 이들의 스캔들이라면 이렇게 충격적이진 않았을 거다.

내가 요즘 느낀 공포심은- 단지 이 사건 때문만이 아니다. 나는 지금 하나의 비유를 든 거다. 내가 몰랐던,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세계에, 놀이에 내가 모르는 게 진짜 많았었더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안다고, 친하다고 느낀 사람들, 세상... 뭐든 그것에 다른 이면이 있을 거란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나도 그러하니까. 하지만 너무 생각지도 못한 모습들이라서, 배신감을 느낀 거다. 그래서 누구를 믿어야할지 몰라 무서워져 버렸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하겠다.

나는 사람에 대해 편견이 별로 없다. 그 사람의 직업은 궁금하지만- 직함은 안중요하다. 나이도, 성적 취향도, 학벌도 안 중요하다. 그저 난 직감만으로 사람을 본다. 봐서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 처음부터 싫으면- 그 사람을 좋아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싫은데 어쩌란 거냐. 어찌 보면 20대 초반의 나는 스카이캐슬 예서같이 친구를 사귀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나는 좀 빨리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었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마치 유치원 시절,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 사귀듯이 친구를 사귄다. 어릴 때 난 매우 키가 작아서 나만 한 애들하고 놀면, 거의 한 두 살 동생들이더라. 위치? 직함? 그런 게 어딨나. 어차피 다 같은 아파트였다. 우리 할머니는 우리 집이 ‘로열층’이라고 자부심을 가지시는 듯 했지만, 나는 1층 살던 할머니 친구 손자네 집이 더 좋은 것 같았다. 화단이 가까웠으니까.

성인이 된 지금- 나는 놀이터에 놀러 나온 꼬마같지만- 진짜 꼬마는 아니다. 이미 30대 초반의 나이다. 어른들은 20대 중반에 ‘예서’에서 다시 ‘나’로 돌아온 나에게, 서른 되면 사람 보는 눈이 바뀔 거라 얘기했었다. 언니들은, ‘시집갈 때 되면 너도 현실적이 될 거다’라고 말했었다. 아니? 나는 더 철이 없어졌다. 그리고 이게 매우 편안하고 나 답다고 느낀다.

필자 작품, 콜라주

그렇기에 난 악당들을 피해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어디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악惡 은 늘 힘 있는 곳에 있으려하고, 선善 은 약한 쪽에 선다고 했었다. 내가 아는 악당들 역시, 힘 있는 쪽에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사실 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쪽에 있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나는 직감적으로 그걸 알 수 있었다. (그냥 사진작가 딸로서 타고난 촉이다.)

나는 약한 쪽에 있었다. 선해서? 아니, 그냥 난 강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양쪽과 모두 친구였다. 힘 있는 쪽엔, 그 힘을 얻으려는 이들이 몰려있다. 마치 퇴역한 개츠비가 벌인 성대한 파티에- 장밋빛 인생을 꿈꾸던 그 여자, 데이지가 찾아오듯이 말이다. 그런 힘 있는 파티엔, 욕망이 드러나야 매력적이다.

‘네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를 내비추는 것이, 매너일지도 모르겠다. 돈인지 명예인지, 아무도 널 무시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권력인지, 널 괴롭힌 저 인간의 여자... 혹은 남자를 뺏는 것인지, 단지 널 무시한 뭐 같은 이 세상에 복수하고 싶은 건지- 네가 진짜 충성하는 게 뭔지 드러내야 하는 거다. 그래야 협상 테이블에 앉아 건배를 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나는 그들 눈에, 드러낸 게 없었다. 당시엔 그런 게 진짜 별로 없었다. 그러니 나는 ‘악당’들과 교환할 게 별로 없었다. 나는 파티에서 살결은 드러낼지 언정, 욕망은 드러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단지 ‘몰입’하여 춤을 출 뿐... 그럼 다른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욕망이 드러날 때는 좀 멋진 이성을 볼 때뿐인데, 내 쪽에 관심이 없으면 금방 시큰둥해지기 마련이었다.

나는 악당들에게 하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거다. 20대 당시, 나에게 돈이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아니 더 정확히, 돈 벌래? 아니... 돈 줄까?- 묻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우리 아빠 전시회 행사에 와서 나와 인사하고는 그런 식의 접근을 하기까지 했었다(그 여자 브로커는 정말 갈 때까지 간 사람인 것 같다, 으).

하지만 지금 나에게 그런 걸 묻는 이는 없다. 10년간 난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사는 삶을 내비친 적이 없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 않으니까- 악당들은 나와 교환할 게 없다고 느꼈나보다.

필자 작품, 콜라주

아니, 나도 돈 엄청 좋아한다. 돈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요즘 정말 일을 줄이고 싶은데- 허리 사이즈보다 더 줄이기 힘든 게... 씀씀이더라. 못 줄이겠다, 스스로가 너무 싫다.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좀 웃길 수도 있지만 내가 무지 멋있다고 느끼기에 멋있게 돈을 벌고 싶다.

내가 욕망하는 것- 내가 원하고 추구하는 것을... 알고자 하면 알 수 있을 텐데. 아니 사실 악당들은 굳이 나에게 그럴 이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이미 교환할 다른 이들이 충분히 많았을 테니까. 그래서 우린 서로의 옆을 떠나지도 안 떠나지도 않은 채- 공존해서 살아갈 뿐이다. 나는 약한 사람이면서도- 악당이 아닌 진짜 힘있는 사람들하고도 친구이니까.

물론 악당들과 교환하는 것엔 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것도 정말 많다. 단지 지금은... 대표적으로 돈을 이야기할 뿐이다.

얼마 전 아빠한테 고맙다고 했다. 미투가 한창 이슈일 때도 난 솔직히 조금 긴장했었는데- 아빠는 그럴 필요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진짜였다. 수많은 정치인들을 찍은 아빠가, 마음만 먹으면 더 욕심낼 수 있는 위치- 아니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지금에와 보니 너무 감사하더라. 당시 누군가는 아빠에게 바보냐 했었다. 하지만 자기 것이 아니면 가지지 않는 게, 옳았던 것이다.

아빠 자랑 같아 보이지만 실은 다- 내 자랑이다. 나도 욕망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쩌면 나도 악당이 될 지도 모른다. 내가 욕망하는 것- 그것을 얻기 위해 나는 나의 가치를 높이려 자꾸자꾸 노력할 거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최근 너무 확실히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가.... 정말 매우 힘들다는 것도 안다. 요즘 나의 상태는? 배신감을 넘어- 두려움을 넘어- 공허함이 되어버렸다. 손 쓸 바가,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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